자료실로 돌아가기

쇼펜하우어의 표상과 의지, 가브리엘의 신실재론

고3 2025년 5월 - 교육청 모의평가

독서인문예술4~9

고3 2025년 5월 - 교육청 모의평가

독서인문예술6문항
[4~9]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가)

이성주의 철학자들은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는 데에 있어 이성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고, 이성을 통해 세계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그들이 말하는 이성은 두뇌 작용에 불과하며, 인간은 세계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쇼펜하우어는 이러한 자신의 주장을 ‘세계는 나의 표상이다.’라는 선언으로 집약한다. 그가 말하는 표상이란 인간이 어떤 사물을 인식할 때, 그 사물을 오감으로 지각하여 두뇌 속에 떠올린 이미지이다. 가령 ‘빨갛고 동그란 과일’을 보고 ‘사과’로 인식한 두뇌 작용이 표상이다. 이러한 표상은 충분 근거율에 따른다. 충분 근거율은 인간이 어떤 사물을 표상할 때, 다른 사물과 구분하게 하는 등 현실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두뇌에 작용하는 인간 개개인의 인식 원리이다. 쇼펜하우어는 이러한 충분 근거율에 입각한 표상이 현실 세계를 경험하게 하는 근거이기 때문에, 인간이 경험하는 세계는 충분 근거율에 한해서만 인식된 세계라고 말한다. 즉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실재 세계가 아니고 충분 근거율에 입각하여 표상된 것일 뿐이며, 우리가 표상하는 세계는 단순히 두뇌 작용으로 경험하는 환영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다면 쇼펜하우어가 생각하는 실재 세계는 무엇일까? 그는 ‘의지’라고 단언한다. 그가 말하는 의지란 아무런 근거나 이유도 없이 맹목적으로 움직이는 힘이자 욕망으로, 실재 그 자체이다.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이러한 의지는 충분 근거율에 따르지 않기 때문에 이성으로 설명하거나 그 자체를 포착할 수 없다.

하지만 세계의 본질인 의지는 우리가 표상하는 세계와 단절된 무엇이 아니다. 쇼펜하우어에 의하면 우리가 표상하는 세계는 의지가 객관화된 세계이다. 이때 ‘의지가 객관화된다.’라는 표현은 의지가 인간의 감각 기관이 포착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나타난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의지가 인간의 감각 기관으로 포착할 수 있는 딱딱하고 동그란 형태로 나타났기 때문에 인간이 그것을 충분 근거율에 입각하여 다른 사물과 구분되는 ‘자갈’이라는 존재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쇼펜하우어에 의하면 의지가 객관화되는 정도의 차이에 따라 중력과 같은 자연력에서부터 무기물, 식물, 동물, 나아가 인간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따라서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사물은 하나의 의지로부터 비롯하여 각자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므로 의지와 단절된 것이 아니라 근원적으로 의지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결국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가 세계의 본질인 의지가 객관화된 표상임을 밝힘으로써 인간이 세계의 본질을 이해할 수는 없더라도 표상으로 그 본질을 경험할 수 있음을 역설한 것이다.

(나)

세계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 관념론자들은 세계는 정신의 산물로 보고, 모든 실재는 정신적인 것으로 구성되었거나 비물질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자연주의자들은 세계를 자연과 동일시하며, 모든 실재는 실험과 관찰로 검증할 수 있는 객관적 대상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철학자 가브리엘은 이러한 관점들이 서로 각자의 실재만이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세계의 본질에 대해 논할 수 없게 만든다고 지적하며, 실재에 대한 새로운 관점인 신실재론을 제안한다.

신실재론에 의하면 물질적인 것은 물론 비물질적인 것도 실재하는 대상으로 보며, 모든 대상은 각각 어떠한 하나의 대상 영역에 포함된다. 이때 대상 영역은 포함된 대상들을 설명할 수 있는 특정한 법칙을 가지며, 그 법칙은 대상 영역마다 서로 다르다. 이러한 대상 영역에는 대상만이 아니라 대상과 대상의 관계를 담은 정황인 사실도 포함된다. 가령, 한 알의 사과와 과일 접시가 있는 세계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때 ‘접시’와 ‘사과’는 물리 법칙으로 설명이 가능한 대상 영역의 대상이며, ‘접시 위에 사과가 놓여 있다.’라는 시공간적 정황은 이 대상 영역의 사실이다. 가브리엘은 인식 주체가 어떤 것이 진리인지 판별이 가능한 것은 사실뿐이며, 사실이 참일 때 진리라고 말한다.

가브리엘은 이렇게 인식 주체가 사실의 진위를 판별할 수 있다는 것은 곧 의미장을 통해 세계에 접근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의미장이란 인식 주체가 어떤 대상 영역의 대상을 인식할 때, 대상이 구체적이고 특정한 방식으로 나타나는 조건이나 배경으로, 가브리엘은 의미장에 나타나는 대상을 실재한다고 표현한다. 예를 들면 내 손은 나의 신체라는 의미장에 나타나지만, 내 손을 글로 묘사했다면 그 글이라는 의미장에도 나타난다. 어떤 경우는 내 꿈이나 오해라는 의미장에서 그만의 방식으로 나타난다. 즉 세계에는 무수히 많은 의미장이 동등하게 존재하며, 모든 의미장에서 나타나는 손들은 모두 각각의 의미장에서 실재이다. 하지만 가브리엘은 하나의 의미장에 실재한다고 곧 참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하나의 대상이 나타나는 의미장이 최소한 두 개 이상 존재해야 실재에 대해 의미 있게 사유하고 토론이 가능하며, 참과 거짓을 밝힐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우리가 다양한 의미장을 통해 세계를 경험하며 각각의 의미장으로 경험하는 세계들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브리엘은 관념론자나 자연주의자들이 정신이나 자연만이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단 하나의 의미장만으로 세계에 접근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비판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주장하는 정신이나 자연이라는 실재가 진리인지 밝히기 위해서는 그들의 의미장과 동등한 또 다른 의미장이 반드시 필요한데, 그들은 다른 의미장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만으로는 실재에 대한 진리 여부, 즉 세계의 본질에 대해 논할 수 없게 된다.

신실재론은 이렇게 다양한 관점이 각자의 실재만이 진리라고 주장하며 충돌하는 현대 사회에 세계의 본질에 대한 확실한 진리 하나를 던져 준다. 그것은 결국 다양한 관점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4.(가)와 (나)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가)와 달리 (나)는 특정 철학적 관점의 변천 과정을 설명하고 해당 이론의 발전 방향을 전망하고 있다.
(나)와 달리 (가)는 특정 철학자들의 주장이 가지는 이론적 장점과 시대적 한계를 분석하고 있다.
(가)와 (나)는 모두, 특정 철학적 관점이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 미친 영향을 제시하고 있다.
(가)와 (나)는 모두, 특정 철학자가 제시한 핵심 개념들을 공통점과 차이점을 중심으로 비교하고 있다.
(가)와 (나)는 모두, 특정 철학적 관점에 대해 비판하는 특정 학자의 견해를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5.(나)의 신실재론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의미장에 나타나는 대상을 실재한다고 본다.
세계에는 무수히 많은 동등한 의미장이 있다고 본다.
어떤 대상이 하나의 의미장에 실재하면 곧 참이라고 본다.
대상 영역이 가지는 특정한 법칙은 대상 영역마다 서로 다르다고 본다.
대상 영역에는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사실도 포함된다고 본다.
6.(가)의 ‘쇼펜하우어’와 (나)의 ‘가브리엘’의 입장에서 <보기>에 대해 판단한 것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보기>

ㄱ. 모든 인식은 개인이 현실을 이해하는 원리나 방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ㄴ. 세계의 본질은 감각적으로 인식할 수 없으며, 이성으로만 세계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

ㄷ. 모든 경험은 우리가 감각하는 세계에 한정되며, 사물의 실재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ㄹ. 자연계를 구성하는 모든 대상은 원자로부터 비롯된 물질로 물리적 법칙으로만 설명할 수 있다.

쇼펜하우어는 ㄱ과 ㄴ에 모두 동의하겠군.
쇼펜하우어는 ㄷ에 동의하지 않고, ㄹ에 동의하겠군.
가브리엘은 ㄷ과 ㄹ에 모두 동의하겠군.
가브리엘은 ㄷ에 동의하지 않고, ㄱ에 동의하겠군.
가브리엘은 ㄹ에 동의하지 않고, ㄴ에 동의하겠군.
7.㉠과 ㉡에 대한 이해로 가장 적절한 것은?
㉠에는 인식 주체가 경험하는 세계는 의지를 감각 기관으로 포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미가, ㉡에는 여러 의미장으로 경험하는 각각의 세계들은 서로 공존할 수 없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에는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충분 근거율에 입각하여 떠올린 이미지에 불과하다는 의미가, ㉡에는 단 하나의 의미장만으로는 세계의 본질에 대해 논할 수 없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에는 인식 주체가 충분 근거율에 입각하여 세계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가, ㉡에는 대상 영역에 포함된 대상들 간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법칙이 없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에는 우리가 표상하는 세계는 의지가 객관화된 세계라는 의미가, ㉡에는 하나의 대상이 여러 의미장에 나타날 때는 실재에 대해 참과 거짓을 밝힐 수 없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에는 우리가 표상하는 세계는 의지가 객관화된 세계와 단절되었다는 의미가, ㉡에는 동일한 대상이 여러 의미장에서 나타날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8.(가), (나)를 이해한 학생이 <보기>에 대해 보인 반응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3점]
<보기>

한 원시 부족에는 아이가 홀로 밀림에서 사슴의 뿔을 구해 와야 전사로 인정받는 풍습이 있다. 매일 ‘사슴의 뿔’을 손에 쥐는 상상을 하던 족장의 아들은 깊은 밤 홀로 밀림에 들어갔다. 길고 단단한 뿔이 난 동물을 보고 ‘사슴’이라고 생각한 그는 그 동물을 사냥해 뿔을 잘라 왔지만, 아침이 되어서 보니 자신이 착각하고 부족의 흉물인 ‘노루의 뿔’을 가져왔음을 알았다. 결국 아들은 전사가 되지 못했지만, 족장은 아들이 가져온 뿔에 아들 이름의 첫 글자를 새겨 첫 사냥을 축하했다.

(가)의 쇼펜하우어는, 에서 아들이 착각한 ‘사슴’과 아침에 본 ‘노루의 뿔’을 모두 아들이 표상한 것으로 보겠군.
(가)의 쇼펜하우어는, 에서 홀로 밀림에 들어간 ‘아들’과 아들이 가져온 ‘노루의 뿔’은 의지가 객관화된 정도가 다르다고 보겠군.
(나)의 가브리엘은, 에서 ‘아들이 가져온 뿔’에 ‘아들 이름의 첫 글자’가 새겨진 정황은 진리인지 판별이 가능하다고 보겠군.
(가)의 쇼펜하우어와 달리 (나)의 가브리엘은, 에서 아들의 상상 속 ‘사슴의 뿔’과 아들이 착각한 ‘사슴’을 모두 실재로 보겠군.
(나)의 가브리엘과 달리 (가)의 쇼펜하우어는, 에서 부족의 흉물인 ‘뿔’과 아들의 첫 사냥을 축하하는 ‘뿔’을 서로 다른 실재로 보겠군.
9.ⓐ의 문맥상 의미와 가장 유사한 것은?
그는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한다.
옆집 아이는 할머니를 잘 따른다.
우리는 능선을 따라 산에 올라갔다.
우리는 선배를 따라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아무도 아버지의 음식 솜씨를 따를 수 없다.

정답과 해설을 확인하려면 구매가 필요합니다

구매 후 정답과 해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