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2025년 10월 - 교육청 모의평가
미학적 담론에서 천재에 대한 규정은 시대에 따라 변화해 왔다. 이 변화는 신이나 자연의 권위에서 벗어나 주체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과 관련이 있다.
신 중심의 사고가 지배하던 중세 시대에 예술은 종교적 목적으로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간주되었고, 예술가는 독자적으로 창작 활동을 하기 어려웠다. 이후 15세기 무렵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하고 인간 중심의 세계관이 싹트면서, 탁월한 능력을 지닌 개인이 주목받기 시작하고 천재가 예술의 역사에 등장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시기 예술가의 임무는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었으며, 이에 따라 천재는 자연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존재로 규정되었다.
자연 모방은 예술의 중심적 경향으로 18세기까지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그러나 시민 사회의 성장과 함께 예술가의 지위도 상승하면서 예술가들은 자연에 대한 단순한 재현 이상의 것을 추구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천재 개념에도 변화가 생겼다. 뒤보는 천재를 자연에서 특별한 부분을 발견하여 모방하는 존재로 보았다. 또한 뒤보는 천재의 모방은 정해진 창작 규칙이 아닌 개인 고유의 표현 방식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았다. 즉 뒤보는 천재를 자연 모방의 테두리 안에서 독자적인 개성을 표현하는 존재로 규정한 것이다.
18세기 후반 ㉮칸트의 미학에서는 천재를 이미 존재하는 것을 모방하는 존재가 아니라 새로운 것을 창작할 수 있는 존재로 보았다. 또한 칸트는 천재의 능력이, 습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소수만이 타고나는 것임을 강조하였다. 칸트에 의하면 천재가 창작한 예술 작품만이 아름다운 것이며, 이는 다른 사람에게 예술에 관한 판단의 준거로 작용할 수 있는 전범이 된다. 칸트에 이르러 천재는 모방으로부터 벗어나 독자적으로 예술 세계를 형성할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19세기 들어 개인의 감정과 개성을 중시하는 낭만주의 사조가 예술의 주류를 형성하면서 낭만적 천재상이 제시되었다. 낭만주의 시대의 천재는 무의식적인 영감을 바탕으로 독창적인 작품을 창작하며,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감정을 자유롭게 ⓒ드러내는 존재로 규정되었다. 즉 낭만주의 시대에 들어서 천재는 종교의 예속과 모방의 의무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독창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존재로 자리잡은 것이다. 이러한 천재상은 신이나 자연의 권위에서 벗어나 독자적 지위를 확보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투영한 것으로, 이후 이어지는 시대의 천재상에도 지속적인 영향을 끼쳤다.
가다머는 이해란 무엇인가에 답하는 철학적 문제에 집중하였다. 가다머는 ‘영향사적 의식’, 즉 우리가 항상 역사적으로 자리매김되어 있다는 의식 안에서만 이해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는 이해의 주체와 대상이 지니는 각각의 역사적 배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다머에 따르면 역사적 배경의 차이로 인해 이해의 주체와 대상 사이에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간격은 대화를 유발한다. 양자 간에 서로 물음을 던지고 답하는 대화의 과정은, 주체에게 축적된 정신적 자산 일체로서의 ‘현재의 지평’과 대상이 지닌 역사적 배경 일체로서의 ‘역사적 지평’이 융합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지평의 융합을 가다머는 이해로 규정했으며, 지평이 융합되어도 간격은 존재하기에 대화가 끊임없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런 가다머에게 천재의 ⓓ뛰어난 창작 능력을 강조하는 천재 미학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가다머는 예술 작품이 예술가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그에게 있어 이해의 과정은 주체와 대상 간의 대화 과정이기에, 예술 작품의 의미는 수용자가 예술 작품을 대면할 때 비로소 발생하는 것이 된다. 가다머는 양자 간의 대화를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사건으로 보며, 이에 따르면 예술 작품의 의미는 예술가에 의해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달라지는 과정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또한 가다머는 예술과 관련한 ‘미적 무구별’을 주장하면서 천재 미학을 비판하였다. 미적 무구별이란 예술 작품을 현실로부터 분리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와 대비되는 개념으로서의 미적 구별은 예술 작품을 외부적 맥락으로부터 독립시켜 현실과 유리된 것으로 보게 만든다. 가다머는 천재 미학이 미적 구별을 통해 예술을 역사적 삶과의 연관성에서 멀어지게 만들었고, 사회적으로 공유된 법칙의 형상화를 중시하는 창작 전통을 해체했다고 지적했다.
가다머가 예술가의 역할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 가다머가 바라보는 예술가는 기교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며 현실을 모방하는 존재이다. 이때 예술가의 역할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대신 현실의 대상을 선택, 강조, 생략하는 것이다. 이런 예술가의 역할도 역사를 벗어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가다머의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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