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자료의 무단 복제·배포·전송을 금지하며, 위반 시 민·형사상 책임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12~17]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가)
심리 철학에서 동일론은 의식이 뇌의 물질적 상태와 동일하다고 ⓐ본다. 이와 달리 기능주의는 의식은 기능이며, 서로 다른 물질에서 같은 기능이 구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때 기능이란 어떤 입력이 주어졌을 때 특정한 출력을 내놓는 함수적 역할로 정의되며, 함수적 역할의 일치는 입력과 출력의 쌍이 일치함을 의미한다. 실리콘 칩으로 구성된 로봇이 찔림이라는 입력에 대해 고통을 출력으로 내놓는 기능을 가진다면, 로봇과 우리는 같은 의식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처럼 기능주의는 의식을 구현하는 물질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설(Searle)은 기능주의를 반박하는 사고 실험을 제시한다. ‘중국어 방’ 안에 중국어를 모르는 한 사람만 있다고 하자. 그는 중국어로 된 입력이 들어오면 정해진 규칙에 따라 중국어로 된 출력을 내놓는다. 설에 의하면 방 안의 사람은 중국어 사용자와 함수적 역할이 같지만 중국어를 아는 것은 아니다. 기능이 같으면서 의식은 다른 사례가 있다는 것이다.
동일론, 기능주의, 설은 모두 의식에 대한 논의를 의식을 구현하는 몸의 내부로만 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의식의 하나인 ‘인지’ 즉 ‘무언가를 알게 됨’은 몸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과 맞물려 벌어진다. 기억나지 않는 정보를 노트북에 저장된 파일을 열람하여 확인하는 것이 한 예이다. 로랜즈의 확장 인지 이론은 이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그에 ⓒ따르면 인지 과정은 주체에게 ‘심적 상태’가 생겨나게 하는 과정이다. 기억이나 믿음이 심적 상태의 예이다. 심적 상태는 어떤 것에도 의존함이 없이 주체에게 의미를 나타낸다. 예를 들어, 무언가를 기억하는 사람은 자기의 기억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아무것에도 의존할 필요가 없다. 이와 달리 ‘파생적 상태’는 주체의 해석에 의존해서만 또는 사회적 합의에 의존해서만 의미를 나타내는 상태로 정의된다. 앞의 예에서 노트북에 저장된 정보는 전자적 신호가 나열된 상태로서 파생적 상태이다. 주체에 의해 열람된 후에도 노트북의 정보는 여전히 파생적 상태이다. 하지만 열람 후 주체에게는 기억이 생겨난다. 로랜즈에게 인지 과정은 파생적 상태가 심적 상태로 변환되는 과정이 아니라, 파생적 상태를 조작함으로써 심적 상태를 생겨나게 하는 과정이다. 심적 상태가 주체의 몸 외부로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 심적 상태를 생겨나게 하는 인지 과정이 확장되는 것이다. 이러한 ㉠확장된 인지 과정은 인지 주체의 것일 때에만, 다시 말해 환경의 변화를 탐지하고 그에 맞춰 행위를 조절하는 주체와 통합되어 있을 때에만 성립할 수 있다. 즉 로랜즈에게 주체 없는 인지란 있을 수 없다. 확장 인지 이론은 의식의 문제를 몸 안으로 한정하지 않고 바깥으로까지 넓혀 설명한다는 의의를 지닌다.
(나)
일반적으로 ‘지각’이란 몸의 감각 기관을 통해 사물에 대해 아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지각을 분석할 때 두 가지 사실에 직면한다. 첫째, 그 사물과 내 몸은 물질세계에 있다. 둘째, 그 사물에 대한 나의 의식은 물질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 있다. 즉 몸으로서의 나는 사물과 같은 세계에 속하는 동시에 의식으로서의 나는 사물과 다른 세계에 속한다.
이에 대한 객관주의 철학의 입장은 두 가지로 나뉜다. 의식을 포함한 모든 것을 물질로 환원하여 의식은 물질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거나, 의식을 물질과 구분되는 독자적 실체로 규정함으로써 의식과 물질의 본질적 차이를 주장한다. 전자에 의하면 지각은 사물로부터의 감각 자극에 따른 주체의 물질적 반응으로 이해되며, 후자에 의하면 지각은 감각된 사물에 대한 주체 즉 의식의 판단으로 이해된다. 이처럼 양자 모두 주체와 대상의 분리를 전제하고 지각을 이해한다. 주체와 대상은 지각 이전에 이미 확정되어 각각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각은 주체와 대상이 각자로서 존재하기 이전에 나타나는 얽힘의 체험이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과 손이 맞닿을 때 내가 누군가의 손을 ⓔ만지는 동시에 나의 손 역시 누군가에 의해 만져진다. 감각하는 것이 동시에 감각되는 것이 되는 얽힘의 순간에, 나는 나와 대상을 확연히 구분한다. 지각이라는 얽힘의 작용이 있어야 주체와 대상이 분리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주체와 대상은 지각이 일어난 이후 비로소 확정된다. 따라서 ㉡지각과 감각은 서로 구분되지 않는다.
지각은 물질적 반응이나 의식의 판단이 아니라, 내 몸의 체험이다. 지각은 나의 몸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고, 지각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은 모두 나의 몸이다.
— , 의식과 인지 과정에 대한 철학적 논의
다음은 윗글을 읽은 학생이 정리한 내용이다. ㉮와 ㉯에 들어갈 말로 가장 적절한 것은?
의식과 함수적 역할, 내 몸의 체험
의식과 함수적 역할, 물질적 반응
의식과 뇌의 상태, 의식의 판단
의식과 뇌의 상태, 내 몸의 체험
입력과 출력, 의식의 판단
(가)에서 알 수 있는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동일론자들은 뇌가 존재하지 않으면 의식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것이다.
설(Searle)은 ‘중국어 방’ 안의 사람과 중국어를 아는 사람의 의식이 다르다고 볼 것이다.
로랜즈는 기억이 주체의 몸 바깥으로 확장될 수 있다고 볼 것이다.
로랜즈는 인지 과정이 파생적 상태를 조작하는 과정을 포함한다고 볼 것이다.
로랜즈는 노트북에 저장된 정보가 그 자체로는 심적 상태가 아니라고 볼 것이다.
(나)의 필자의 관점에서 ㉠을 평가한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확장된 인지 과정이 인지 주체의 것일 때에만 성립할 수 있다는 주장은, 지각 이전에 확정된 주체를 전제한 것이므로 타당하지 않다.
확장된 인지 과정이 인지 주체의 것일 때에만 성립할 수 있다는 주장은, 의식이 세계를 구성하는 독자적 실체라고 규정하는 것이므로 타당하다.
주체와 통합된 경우에만 확장된 인지 과정이 성립할 수 있다는 주장은, 의식은 물질에 불과하다고 본 것이므로 타당하다.
주체와 통합된 경우에만 확장된 인지 과정이 성립할 수 있다는 주장은, 외부 세계에 대한 지각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보는 것이므로 타당하지 않다.
주체와 통합된 경우에만 확장된 인지 과정이 성립할 수 있다는 주장은, 주체와 대상의 분리를 통해서만 지각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므로 타당하다.
㉡의 이유로 가장 적절한 것은?
감각과 지각 모두 물질세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감각하는 것이 동시에 감각되는 것이 되는 얽힘의 작용이 지각이기 때문에
지각은 몸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감각은 몸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지각은 의식으로서의 주체가 외부의 대상을 감각하여 판단한 결과이기 때문에
주체와 대상이 분리되기 이전에 감각과 지각이 분리된 채로 존재하기 때문에
(가), (나)를 바탕으로 <보기>의 상황을 이해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가)의 기능주의에 따르면, A와 B가 암실 내 동일한 사물의 위치를 묻는 질문에 동일한 대답을 내놓는 경우 이때 둘의 의식은 차이가 없겠군.
(가)의 확장 인지 이론에 따르면, BCI로 암실 내 사물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 B의 인지 과정인 경우 B에게 사물의 위치에 대한 심적 상태가 생겨나겠군.
(가)의 확장 인지 이론에 따르면, 암실 내 사물에 부딪친 막대기의 진동이 A의 해석에 의존해서만 의미를 나타내는 경우 그 진동 상태는 파생적 상태가 아니겠군.
(나)에서 몸에 의한 지각을 주장하는 입장에 따르면, 막대기에 의해 A가 사물의 위치를 지각하는 경우 막대기는 A의 몸의 일부라고 할 수 있겠군.
(나)에서 의식을 물질로 환원하는 입장에 따르면, BCI를 통해 입력된 정보로부터 B의 지각이 일어난 경우 BCI를 통해 들어온 자극에 따른 B의 물질적 반응이 일어난 것이겠군.
문맥상 ⓐ~ⓔ의 단어와 가장 가까운 의미로 쓰인 것은?
ⓐ: 그간의 사정을 봐서 그를 용서해 주었다.
ⓑ: 이사 후에 가난하던 살림살이가 일어났다.
ⓒ: 개발에 따른 자연 훼손 문제가 심각해졌다.
ⓓ: 단어의 뜻을 알아보기 위해 사전을 펼쳤다.
ⓔ: 그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제법 만질 줄 안다.
(가)에서 동일론은 의식이 뇌의 물질적 상태와 동일하다고 본다.
(가)의 동일론은 의식을 구현하는 물질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가)에서 기능주의는 서로 다른 물질에서 같은 기능이 구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가)에서 기능주의에 따르면 함수적 역할의 일치는 입력과 출력의 쌍이 일치함을 의미한다.
(가)의 설은 '중국어 방' 사고 실험을 제시하여 기능주의를 반박한다.
(가)에서 설에 따르면 '중국어 방' 안의 사람은 중국어 사용자와 함수적 역할이 다르다.
(가)의 설은 기능이 같으면서 의식은 다른 사례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가)에서 동일론, 기능주의, 설은 모두 의식에 대한 논의를 몸의 내부로만 한정하고 있다.
(가)에 따르면 의식의 하나인 인지는 몸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과 독립적으로 벌어진다.
(가)에서 로랜즈의 확장 인지 이론에 따르면 인지 과정은 주체에게 '심적 상태'가 생겨나게 하는 과정이다.
(가)의 로랜즈는 믿음을 심적 상태의 한 예로 제시한다.
(가)에서 로랜즈에 따르면 심적 상태는 어떤 것에 의존해야만 주체에게 의미를 나타낸다.
(가)에서 로랜즈에 따르면 '파생적 상태'는 주체의 해석이나 사회적 합의에 의존해서만 의미를 나타내는 상태이다.
(가)의 로랜즈는 노트북에 저장된 정보를 파생적 상태로 본다.
(가)에서 로랜즈에 따르면 노트북의 정보는 주체에 의해 열람된 후 심적 상태로 변환된다.
(가)에서 로랜즈의 인지 과정은 파생적 상태를 조작함으로써 심적 상태를 생겨나게 하는 과정이다.
(가)에서 로랜즈의 이론은 심적 상태가 주체의 몸 외부로 확장된다고 설명한다.
(가)에서 로랜즈는 주체 없는 인지도 성립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가)에서 확장 인지 이론은 의식의 문제를 몸 바깥으로까지 넓혀 설명한다는 의의를 지닌다.
(나)에 따르면 지각을 분석할 때 사물과 몸은 물질세계에 있다는 사실에 직면하게 된다.
(나)에 따르면 사물과 사물에 대한 나의 의식은 같은 세계에 속한다.
(나)에서 객관주의 철학은 의식을 포함한 모든 것을 물질로 환원하는 입장을 지니기도 한다.
(나)에서 의식을 물질로 환원하는 객관주의 철학의 입장은 지각을 의식의 판단으로 이해한다.
(나)에서 의식을 물질과 구분되는 독자적 실체로 규정하는 입장은 지각을 감각된 사물에 대한 의식의 판단으로 이해한다.
(나)에서 객관주의 철학의 두 입장은 모두 주체와 대상의 분리를 전제하고 지각을 이해한다.
(나)에서 객관주의 철학에 따르면 주체와 대상은 지각이 일어난 이후에 비로소 확정된다.
(나)에 따르면 지각은 주체와 대상이 각자로서 존재하기 이전에 나타나는 얽힘의 체험이다.
(나)에 따르면 지각이라는 얽힘의 작용이 있어야 주체와 대상이 분리될 수 있다.
(나)에 따르면 지각과 감각은 서로 확연히 구분된다.
(나)에 따르면 지각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은 모두 나의 몸이다.
(가)에서 의식이 뇌의 물질적 상태와 동일하다고 보는 심리 철학의 입장은 무엇인가?
(가)에서 기능주의가 '어떤 입력이 주어졌을 때 특정한 출력을 내놓는 함수적 역할'로 정의하는 것은 무엇인가?
(가)에서 설(Searle)이 기능주의를 반박하기 위해 제시한 사고 실험의 이름은 무엇인가?
(가)의 로랜즈의 이론에서 주체에게 의미를 나타낼 때 어떤 것에도 의존함이 없는 상태를 무엇이라 부르는가?
(가)의 로랜즈의 이론에서 주체의 해석에 의존해서만 또는 사회적 합의에 의존해서만 의미를 나타내는 상태를 무엇이라 부르는가?
(가)의 4문단에 따르면 심적 상태를 생겨나게 하는 인지 과정이 주체의 외부로 넓혀진다고 설명하는 이론은 무엇인가?
(나)에서 몸의 감각 기관을 통해 사물에 대해 아는 것을 의미하는 용어는 무엇인가?
(나)에서 의식을 물질로 환원하거나 물질과 구분되는 독자적 실체로 규정하는 철학적 입장을 무엇이라 부르는가?
(나)에서 지각은 주체와 대상이 각자로서 존재하기 이전에 나타나는 무슨 체험이라고 설명되는가?
(나)에 따르면 물질적 반응이나 의식의 판단이 아닌 '나의 몸'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은 무엇인가?
[1~5]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가)
심리 철학에서 동일론은 의식이 뇌의 물질적 상태와 동일하다고 본다. 이와 달리 기능주의는 의식은 기능이며, 서로 다른 물질에서 같은 기능이 구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때 기능이란 어떤 입력이 주어졌을 때 특정한 출력을 내놓는 함수적 역할로 정의되며, 함수적 역할의 일치는 입력과 출력의 쌍이 일치함을 의미한다. 실리콘 칩으로 구성된 로봇이 찔림이라는 입력에 대해 고통을 출력으로 내놓는 기능을 가진다면, 로봇과 우리는 같은 의식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처럼 기능주의는 의식을 구현하는 물질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설(Searle)은 기능주의를 반박하는 사고 실험을 제시한다. ‘중국어 방’ 안에 중국어를 모르는 한 사람만 있다고 하자. 그는 중국어로 된 입력이 들어오면 정해진 규칙에 따라 중국어로 된 출력을 내놓는다. 설에 의하면 방 안의 사람은 중국어 사용자와 함수적 역할이 같지만 중국어를 아는 것은 아니다. 기능이 같으면서 의식은 다른 사례가 있다는 것이다.
동일론, 기능주의, 설은 모두 의식에 대한 논의를 의식을 구현하는 몸의 내부로만 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의식의 하나인 ‘인지’ 즉 ‘무언가를 알게 됨’은 몸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과 맞물려 벌어진다. 기억나지 않는 정보를 노트북에 저장된 파일을 열람하여 확인하는 것이 한 예이다. 로랜즈의 확장 인지 이론은 이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그에 따르면 인지 과정은 주체에게 ‘㉠심적 상태’가 생겨나게 하는 과정이다. 기억이나 믿음이 심적 상태의 예이다. 심적 상태는 어떤 것에도 의존함이 없이 주체에게 의미를 나타낸다. 예를 들어, 무언가를 기억하는 사람은 자기의 기억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아무것에도 의존할 필요가 없다. 이와 달리 ‘㉡파생적 상태’는 주체의 해석에 의존해서만 또는 사회적 합의에 의존해서만 의미를 나타내는 상태로 정의된다. 앞의 예에서 노트북에 저장된 정보는 전자적 신호가 나열된 상태로서 파생적 상태이다. 주체에 의해 열람된 후에도 노트북의 정보는 여전히 파생적 상태이다. 하지만 열람 후 주체에게는 기억이 생겨난다. 로랜즈에게 인지 과정은 파생적 상태가 심적 상태로 변환되는 과정이 아니라, 파생적 상태를 조작함으로써 심적 상태를 생겨나게 하는 과정이다. 심적 상태가 주체의 몸 외부로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 심적 상태를 생겨나게 하는 인지 과정이 확장되는 것이다. 이러한 확장된 인지 과정은 인지 주체의 것일 때에만, 다시 말해 환경의 변화를 탐지하고 그에 맞춰 행위를 조절하는 주체와 통합되어 있을 때에만 성립할 수 있다. 즉 로랜즈에게 주체 없는 인지란 있을 수 없다. 확장 인지 이론은 의식의 문제를 몸 안으로 한정하지 않고 바깥으로까지 넓혀 설명한다는 의의를 지닌다.
(나)
일반적으로 ‘지각’이란 몸의 감각 기관을 통해 사물에 대해 아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지각을 분석할 때 두 가지 사실에 직면한다. 첫째, 그 사물과 내 몸은 물질세계에 있다. 둘째, 그 사물에 대한 나의 의식은 물질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 있다. 즉 몸으로서의 나는 사물과 같은 세계에 속하는 동시에 의식으로서의 나는 사물과 다른 세계에 속한다.
이에 대한 객관주의 철학의 입장은 두 가지로 나뉜다. 의식을 포함한 모든 것을 물질로 환원하여 의식은 물질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거나, 의식을 물질과 구분되는 독자적 실체로 규정함으로써 의식과 물질의 본질적 차이를 주장한다. 전자에 의하면 지각은 사물로부터의 감각 자극에 따른 주체의 물질적 반응으로 이해되며, 후자에 의하면 지각은 감각된 사물에 대한 주체 즉 의식의 판단으로 이해된다. 이처럼 양자 모두 주체와 대상의 분리를 전제하고 지각을 이해한다. 주체와 대상은 지각 이전에 이미 확정되어 각각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각은 주체와 대상이 각자로서 존재하기 이전에 나타나는 얽힘의 체험이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과 손이 맞닿을 때 내가 누군가의 손을 만지는 동시에 나의 손 역시 누군가에 의해 만져진다. 감각하는 것이 동시에 감각되는 것이 되는 얽힘의 순간에, 나는 나와 대상을 확연히 구분한다. 지각이라는 얽힘의 작용이 있어야 주체와 대상이 분리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주체와 대상은 지각이 일어난 이후 비로소 확정된다. 따라서 지각과 감각은 서로 구분되지 않는다.
지각은 물질적 반응이나 의식의 판단이 아니라, 내 몸의 체험이다. 지각은 나의 몸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고, 지각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은 모두 나의 몸이다.
윗글의 내용 전개 방식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가 지문은 의식의 범주를 여러 기준으로 분류한 후 각 범주에 해당하는 구체적 사례를 나열하고 있고, 나 지문은 지각이 이루어지는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단계별로 분석하여 설명하고 있다.
가 지문은 의식과 관련된 다양한 이론들을 역사적 발생 순서에 따라 통시적으로 나열하고 있고, 나 지문은 지각과 관련된 특정 철학자의 생애를 중심으로 학문의 발전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가 지문은 심리 철학의 대립하는 두 주장을 절충하여 실현 가능한 제3의 대안을 모색하고 있고, 나 지문은 객관주의 철학 내부의 모순을 지적하여 두 입장이 궁극적으로 동일함을 증명하고 있다.
가 지문은 의식에 관한 특정 이론들이 지닌 한계를 지적하며 새로운 이론을 소개하고 있고, 나 지문은 지각에 대한 기존의 철학적 입장을 비판하며 지각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가 지문은 의식을 규명하는 실험적 방법론의 타당성을 객관적인 데이터를 통해 검증하고 있고, 나 지문은 지각에 대한 상반된 철학적 입장을 비교하여 각각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해결책을 제안하고 있다.
윗글을 바탕으로 ㉠과 ㉡에 대해 이해한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은 ㉡과 달리, 외부 환경의 자극 없이도 주체의 몸 바깥으로 스스로 확장되어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독립적인 성질을 지닌다.
㉡은 ㉠과 달리, 인지 과정에 의해 조작의 대상이 됨으로써 주체에게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않는 무의미한 상태로 변환된다.
㉠은 어떤 것에도 의존함이 없이 주체에게 의미를 나타내는 반면, ㉡은 주체의 해석이나 사회적 합의에 의존해서만 의미를 나타낸다.
㉠과 ㉡은 모두, 로랜즈의 관점에서 인지 주체의 개입 여부와 무관하게 환경의 변화를 독립적으로 탐지하여 행위를 조절할 수 있다.
㉡은 ㉠과 달리, 주체에 의해 한 번 열람되고 나면 그 즉시 본래의 성질을 상실하고 주체의 몸 내부에 귀속된 기억으로 탈바꿈한다.
윗글을 바탕으로 다음의 ㄱ~ㄹ에 대해 판단한 것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의식을 기능으로 정의하는 기능주의는 명제 ㄱ과 ㄷ에 대해 모두 긍정하는 입장을 보이겠군.
의식을 기능으로 정의하는 기능주의는 명제 ㄱ에 동의하지 않고, 명제 ㄴ에 동의하는 입장을 보이겠군.
기능주의를 반박하는 사고 실험을 제시한 설은 명제 ㄱ과 ㄷ에 대해 모두 긍정하는 입장을 보이겠군.
기능주의를 반박하는 사고 실험을 제시한 설은 명제 ㄴ에 동의하지 않고, 명제 ㄹ에 동의하는 입장을 보이겠군.
기능주의를 반박하는 사고 실험을 제시한 설은 명제 ㄱ에 동의하지 않고, 명제 ㄷ에 동의하는 입장을 보이겠군.
윗글을 바탕으로 추론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객관주의 철학에서 지각을 의식의 판단으로 규정하는 입장은, 의식이 사물과 다른 세계에 속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성립한 것이겠군.
감각하는 것과 감각되는 것이 동시에 일어나는 얽힘의 작용이 없다면, 나와 대상이 확연히 구분되는 주체와 대상의 확정도 일어나지 않겠군.
필자는 지각을 물질적 반응이나 의식의 판단으로 나누는 이해를 거부하고, 지각이 이루어지게 하는 주도권이 오직 나의 몸에 있다고 판단하겠군.
객관주의 철학에서 의식을 물질로 환원하는 입장은, 지각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사물로부터의 감각 자극이 주체의 물질적 반응보다 선행한다고 전제하겠군.
필자는 다른 사람과 손이 맞닿는 상황에서, 손을 만지는 내 몸의 체험 이전에 주체로서의 나와 대상으로서의 타인이 이미 확정되어 각각 존재한다고 보겠군.
윗글을 바탕으로 <보기>를 이해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객관주의 중 전자의 입장에 따르면, A가 운전대와 접촉하여 상호작용하는 것은 사물로부터의 감각 자극에 따른 주체의 물질적 반응으로 이해되겠군.
객관주의 중 후자의 입장에 따르면, A가 화면을 보고 경로 파악하는 것은 감각된 사물인 화면에 대해 주체 즉 의식이 판단을 내린 것으로 이해되겠군.
필자에 따르면, A의 시선이 화면을 향하고 손이 운전대와 접촉하는 얽힘의 체험이 일어난 이후에야 비로소 주체인 A와 대상인 운전대가 분리되어 확정되겠군.
로랜즈에 따르면, A가 화면의 경로 정보를 확인하여 길을 파악하는 것은 전자 지도의 파생적 상태가 A의 심적 상태로 변환되어 A에게 목적지까지의 경로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과정이겠군.
로랜즈에 따르면, A가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행위를 조절하는 과정에서 화면에 표시된 경로 정보는 A에 의해 열람된 후에도 여전히 주체의 해석에 의존해야만 의미를 나타내는 상태로 남아 있겠군.
[6~10]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가)
심리 철학에서 동일론은 의식이 뇌의 물질적 상태와 동일하다고 본다. 이와 달리 기능주의는 의식은 기능이며, 서로 다른 물질에서 같은 기능이 구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때 기능이란 어떤 입력이 주어졌을 때 특정한 출력을 내놓는 함수적 역할로 정의되며, 함수적 역할의 일치는 입력과 출력의 쌍이 일치함을 의미한다. 실리콘 칩으로 구성된 로봇이 찔림이라는 입력에 대해 고통을 출력으로 내놓는 기능을 가진다면, 로봇과 우리는 같은 의식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처럼 기능주의는 의식을 구현하는 물질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설(Searle)은 기능주의를 반박하는 사고 실험을 제시한다. ‘중국어 방’ 안에 중국어를 모르는 한 사람만 있다고 하자. 그는 중국어로 된 입력이 들어오면 정해진 규칙에 따라 중국어로 된 출력을 내놓는다. 설에 의하면 방 안의 사람은 중국어 사용자와 함수적 역할이 같지만 중국어를 아는 것은 아니다. 기능이 같으면서 의식은 다른 사례가 있다는 것이다.
동일론, 기능주의, 설은 모두 의식에 대한 논의를 의식을 구현하는 몸의 내부로만 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의식의 하나인 ‘인지’ 즉 ‘무언가를 알게 됨’은 몸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과 맞물려 벌어진다. 기억나지 않는 정보를 노트북에 저장된 파일을 열람하여 확인하는 것이 한 예이다. 로랜즈의 확장 인지 이론은 이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그에 따르면 인지 과정은 주체에게 ‘심적 상태’가 생겨나게 하는 과정이다. 기억이나 믿음이 심적 상태의 예이다. 심적 상태는 어떤 것에도 의존함이 없이 주체에게 의미를 나타낸다. 예를 들어, 무언가를 기억하는 사람은 자기의 기억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아무것에도 의존할 필요가 없다. 이와 달리 ‘파생적 상태’는 주체의 해석에 의존해서만 또는 사회적 합의에 의존해서만 의미를 나타내는 상태로 정의된다. 앞의 예에서 노트북에 저장된 정보는 전자적 신호가 나열된 상태로서 파생적 상태이다. ㉮주체에 의해 열람된 후에도 노트북의 정보는 여전히 파생적 상태이다. 하지만 열람 후 주체에게는 기억이 생겨난다. 로랜즈에게 인지 과정은 파생적 상태가 심적 상태로 변환되는 과정이 아니라, 파생적 상태를 조작함으로써 심적 상태를 생겨나게 하는 과정이다. 심적 상태가 주체의 몸 외부로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 심적 상태를 생겨나게 하는 인지 과정이 확장되는 것이다. 이러한 확장된 인지 과정은 인지 주체의 것일 때에만, 다시 말해 환경의 변화를 탐지하고 그에 맞춰 행위를 조절하는 주체와 통합되어 있을 때에만 성립할 수 있다. 즉 로랜즈에게 주체 없는 인지란 있을 수 없다. 확장 인지 이론은 의식의 문제를 몸 안으로 한정하지 않고 바깥으로까지 넓혀 설명한다는 의의를 지닌다.
(나)
일반적으로 ‘지각’이란 몸의 감각 기관을 통해 사물에 대해 아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지각을 분석할 때 두 가지 사실에 직면한다. 첫째, 그 사물과 내 몸은 물질세계에 있다. 둘째, 그 사물에 대한 나의 의식은 물질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 있다. 즉 몸으로서의 나는 사물과 같은 세계에 속하는 동시에 의식으로서의 나는 사물과 다른 세계에 속한다.
이에 대한 객관주의 철학의 입장은 두 가지로 나뉜다. 의식을 포함한 모든 것을 물질로 환원하여 의식은 물질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거나, 의식을 물질과 구분되는 독자적 실체로 규정함으로써 의식과 물질의 본질적 차이를 주장한다. 전자에 의하면 지각은 사물로부터의 감각 자극에 따른 주체의 물질적 반응으로 이해되며, 후자에 의하면 지각은 감각된 사물에 대한 주체 즉 의식의 판단으로 이해된다. 이처럼 양자 모두 주체와 대상의 분리를 전제하고 지각을 이해한다. 주체와 대상은 지각 이전에 이미 확정되어 각각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각은 주체와 대상이 각자로서 존재하기 이전에 나타나는 얽힘의 체험이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과 손이 맞닿을 때 내가 누군가의 손을 만지는 동시에 나의 손 역시 누군가에 의해 만져진다. 감각하는 것이 동시에 감각되는 것이 되는 얽힘의 순간에, 나는 나와 대상을 확연히 구분한다. 지각이라는 얽힘의 작용이 있어야 주체와 대상이 분리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주체와 대상은 지각이 일어난 이후 비로소 확정된다. 따라서 지각과 감각은 서로 구분되지 않는다.
지각은 물질적 반응이나 의식의 판단이 아니라, 내 몸의 체험이다. 지각은 나의 몸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고, 지각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은 모두 나의 몸이다.
윗글을 이해한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기능주의는 동일한 함수적 역할을 수행하는 서로 다른 물질들은 각기 구분되는 서로 다른 형태의 독립된 의식을 지니게 된다고 주장한다.
설은 중국어 방 안의 사람이 정해진 규칙에 따라 출력을 내놓는 기능을 수행하더라도, 중국어 사용자와는 전혀 다른 함수적 역할을 가진다고 본다.
필자는 지각이라는 얽힘의 작용 이전에 감각하는 나와 감각되는 대상이 이미 각각의 세계에 완전하게 분리되어 확정된다는 객관주의의 전제를 옹호한다.
로랜즈는 파생적 상태를 조작하여 심적 상태를 생겨나게 하는 인지 과정이 외부로 확장된다고 보면서도, 이는 주체와 통합되어야만 성립한다고 주장한다.
동일론과 기능주의는 의식을 규명하는 기준에 있어서는 서로 대립하지만, 의식의 문제를 인지 주체의 몸 바깥 영역으로까지 확장하여 설명한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윗글을 참고할 때, ㉮의 이유로 가장 적절한 것은?
주체가 노트북의 정보를 열람하는 과정에서 전자적 신호가 주체의 기억과 완전히 동일한 실체의 심적 상태로 변환되기 때문이다.
노트북의 정보는 사회적 합의와 무관하게 그 자체만으로 주체에게 독립적인 의미를 나타내는 심적 상태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트북의 정보가 주체의 몸 외부로 확장되어 주체에게 새로운 심적 상태를 직접적으로 이식하는 독립적 성질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노트북의 정보는 열람 후에도 주체의 해석에 의존해야만 비로소 의미를 나타내는 파생적 상태의 본질을 그대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인지 주체가 환경의 변화를 탐지하지 못하더라도 노트북의 정보 스스로 심적 상태를 생겨나게 하는 내부 조작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윗글의 [A]에 대한 이해로 가장 적절하지 않은 것은?
객관주의 철학 중 의식을 물질로 환원하는 입장은, 신체 외부의 사물로부터 전달되는 감각 자극이 선행되어야만 지각이라는 물질적 반응이 나타난다고 판단하겠군.
객관주의 철학 중 의식을 독자적 실체로 규정하는 입장은, 지각을 수행하는 의식이 물질세계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세계에 속한다고 전제하겠군.
객관주의 철학의 양 입장은 서로 다른 본질을 주장하지만, 주체와 대상이 얽히는 지각 작용을 거친 이후에야 비로소 두 개체가 명확히 분리된다고 동일하게 간주하겠군.
객관주의 철학의 양 입장은 의식과 물질의 관계를 규명하는 구체적인 방식은 다르더라도, 지각 이전에 감각하는 주체와 대상이 이미 확정되어 있다는 전제를 공유하겠군.
객관주의 철학이 지각을 분석하기 위해 도입한 두 입장은 모두 내 몸과 사물이 하나의 물질세계에 속하면서도 의식은 그렇지 않다는 분열적 딜레마를 해결하려는 시도이겠군.
윗글을 읽은 학생의 반응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기능주의에 따르면, 어떤 기계가 인간과 완전히 동일한 입력과 출력의 쌍을 보여준다면 그 기계의 물질적 구성과 무관하게 인간과 동일한 의식을 가졌다고 보아야 하겠군.
객관주의 중 의식을 물질로 환원하는 입장에 따르면, 내가 뜨거운 난로에 손을 대고 반사적으로 움츠리는 지각 현상은 뜨거움이라는 감각 자극에 대해 내 몸이 나타낸 물질적 반응으로 설명할 수 있겠군.
필자에 따르면, 내가 다른 사람과 악수를 할 때 상대방 손의 온기를 느끼는 동시에 내 손의 온기도 전해지는 얽힘을 겪은 이후에야 비로소 악수를 하는 나와 상대방이 분리된 대상과 주체로 확정되겠군.
필자에 따르면, 지각은 주체와 대상이 각자로서 존재하기 이전에 나타나는 얽힘의 체험이므로 인간이 사물을 온전히 지각하기 위해서는 몸의 감각 기관이 개입하기 이전에 의식의 판단이 먼저 이루어져야 하겠군.
확장 인지 이론에 따르면, 내가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 읽으며 지식을 얻는 현상은 책이라는 파생적 상태가 내 몸 안으로 들어와 심적 상태로 변환되는 것이 아니라 파생적 상태를 조작해 앎을 생겨나게 하는 과정이겠군.
윗글을 바탕으로 <보기>의 C의 주장을 이해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C는 필자와 마찬가지로, 내 몸과 세계가 맞닿는 얽힘의 순간 이전에는 주체와 대상이 각자로서 확정되어 온전히 존재할 수 없다고 판단하겠군.
C는 필자와 마찬가지로, 주체가 감각된 사물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과정을 거친 이후에야 비로소 감각하는 것과 감각되는 것의 얽힘이 나타난다고 주장하겠군.
C는 로랜즈가 파생적 상태를 조작하는 주체를 전제한 것에 대해, 환경과 상호작용하기 이전에 이미 확고하게 존재하는 나를 출발점으로 삼은 오류라고 비판하겠군.
C는 로랜즈가 인지 과정의 확장을 주장하면서도 주체 없는 인지란 있을 수 없다고 본 것에 대해, 결국 주체와 대상의 분리를 전제하고 인지를 이해한 것이라고 지적하겠군.
C는 로랜즈가 주장한 환경의 변화를 탐지하는 주체에 대해, 최초의 마찰음 속에서 탄생하는 진정한 주체의 성질을 간과한 채 지각 이전에 주체를 확정한 것이라고 평가하겠군.
[11~15]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가)
심리 철학에서 동일론은 의식이 뇌의 물질적 상태와 동일하다고 본다. 이와 달리 기능주의는 의식은 기능이며, 서로 다른 물질에서 같은 기능이 구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때 기능이란 어떤 입력이 주어졌을 때 특정한 출력을 내놓는 함수적 역할로 정의되며, 함수적 역할의 일치는 입력과 출력의 쌍이 일치함을 의미한다. 실리콘 칩으로 구성된 로봇이 찔림이라는 입력에 대해 고통을 출력으로 내놓는 기능을 가진다면, 로봇과 우리는 같은 의식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처럼 기능주의는 의식을 구현하는 물질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설(Searle)은 기능주의를 반박하는 사고 실험을 제시한다. ‘중국어 방’ 안에 중국어를 모르는 한 사람만 있다고 하자. 그는 중국어로 된 입력이 들어오면 정해진 규칙에 따라 중국어로 된 출력을 내놓는다. 설에 의하면 방 안의 사람은 중국어 사용자와 함수적 역할이 같지만 중국어를 아는 것은 아니다. 기능이 같으면서 의식은 다른 사례가 있다는 것이다.
동일론, 기능주의, 설은 모두 의식에 대한 논의를 의식을 구현하는 몸의 내부로만 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의식의 하나인 ‘인지’ 즉 ‘무언가를 알게 됨’은 몸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과 맞물려 벌어진다. 기억나지 않는 정보를 노트북에 저장된 파일을 열람하여 확인하는 것이 한 예이다. 로랜즈의 확장 인지 이론은 이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그에 따르면 인지 과정은 주체에게 ‘심적 상태’가 생겨나게 하는 과정이다. 기억이나 믿음이 심적 상태의 예이다. 심적 상태는 어떤 것에도 의존함이 없이 주체에게 의미를 나타낸다. 예를 들어, 무언가를 기억하는 사람은 자기의 기억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아무것에도 의존할 필요가 없다. 이와 달리 ‘파생적 상태’는 주체의 해석에 의존해서만 또는 사회적 합의에 의존해서만 의미를 나타내는 상태로 정의된다. 앞의 예에서 노트북에 저장된 정보는 전자적 신호가 나열된 상태로서 파생적 상태이다. 주체에 의해 열람된 후에도 노트북의 정보는 여전히 파생적 상태이다. 하지만 열람 후 주체에게는 기억이 생겨난다. 로랜즈에게 인지 과정은 파생적 상태가 심적 상태로 변환되는 과정이 아니라, 파생적 상태를 조작함으로써 심적 상태를 생겨나게 하는 과정이다. 심적 상태가 주체의 몸 외부로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 심적 상태를 생겨나게 하는 인지 과정이 확장되는 것이다. 이러한 확장된 인지 과정은 인지 주체의 것일 때에만, 다시 말해 환경의 변화를 탐지하고 그에 맞춰 행위를 조절하는 주체와 통합되어 있을 때에만 성립할 수 있다. 즉 로랜즈에게 주체 없는 인지란 있을 수 없다. 확장 인지 이론은 의식의 문제를 몸 안으로 한정하지 않고 바깥으로까지 넓혀 설명한다는 의의를 지닌다.
(나)
일반적으로 ‘㉠지각’이란 몸의 감각 기관을 통해 사물에 대해 아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지각을 분석할 때 두 가지 사실에 직면한다. 첫째, 그 사물과 내 몸은 물질세계에 있다. 둘째, 그 사물에 대한 나의 의식은 물질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 있다. 즉 몸으로서의 나는 사물과 같은 세계에 속하는 동시에 의식으로서의 나는 사물과 다른 세계에 속한다.
이에 대한 객관주의 철학의 입장은 두 가지로 나뉜다. 의식을 포함한 모든 것을 물질로 환원하여 의식은 물질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거나, 의식을 물질과 구분되는 독자적 실체로 규정함으로써 의식과 물질의 본질적 차이를 주장한다. 전자에 의하면 지각은 사물로부터의 감각 자극에 따른 주체의 물질적 반응으로 이해되며, 후자에 의하면 지각은 감각된 사물에 대한 주체 즉 의식의 판단으로 이해된다. 이처럼 양자 모두 주체와 대상의 분리를 전제하고 지각을 이해한다. 주체와 대상은 지각 이전에 이미 확정되어 각각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각은 주체와 대상이 각자로서 존재하기 이전에 나타나는 얽힘의 체험이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과 손이 맞닿을 때 내가 누군가의 손을 만지는 동시에 나의 손 역시 누군가에 의해 만져진다. 감각하는 것이 동시에 감각되는 것이 되는 얽힘의 순간에, 나는 나와 대상을 확연히 구분한다. 지각이라는 얽힘의 작용이 있어야 주체와 대상이 분리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주체와 대상은 지각이 일어난 이후 비로소 확정된다. 따라서 지각과 감각은 서로 구분되지 않는다.
지각은 물질적 반응이나 의식의 판단이 아니라, 내 몸의 체험이다. 지각은 나의 몸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고, 지각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은 모두 나의 몸이다.
윗글을 통해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은?
로랜즈의 이론에 따르면 주체 바깥으로 확장된 인지 과정이 성립하기 위해 인지 주체는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가.
기능주의에 따르면 서로 다른 물질로 이루어진 존재들이 동일한 의식을 가지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가.
객관주의 철학 중 후자의 입장은 지각 현상을 분석할 때 감각된 사물에 대해 주체가 어떤 작용을 수행한다고 판단하는가.
필자에 따르면 지각과 감각이 구분되지 않는 이유는 얽힘의 작용과 주체의 확정 사이에 어떤 선후 관계가 있기 때문인가.
동일론에 따르면 의식을 뇌의 물질적 상태로 국한할 때 뇌 이외의 다른 물질은 의식을 구현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윗글의 ㉠에 대한 이해로 가장 적절한 것은?
㉠은 필자에 따르면 감각하는 주체와 감각되는 대상이 물질세계에서 온전히 분리되고 확정된 이후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은 객관주의 중 전자의 입장에 따르면 감각된 외부의 사물에 대해 주체가 내리는 독자적인 의식의 판단 과정으로 정의된다.
㉠은 필자에 따르면 주체와 대상이 얽히는 체험을 거쳐 감각과 명확히 구분되는 독립적인 인지 단계로 발전하게 된다.
㉠은 필자에 따르면 사물로부터의 감각 자극에 따른 물질적 반응이나 판단이 아니라 나의 몸에 의해 이루어지는 체험이다.
㉠은 객관주의 철학의 양 입장에 따르면 사물에 대한 의식이 물질세계와 다른 세계에 속함을 부정함으로써 주체와 대상을 통합한다.
윗글을 바탕으로 다음의 ㄱ~ㄹ에 대해 판단한 것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객관주의 철학 중 전자의 입장은 ㄱ과 ㄷ에 동의하겠군.
객관주의 철학 중 전자의 입장은 ㄹ에 동의하지 않고, ㄴ에 동의하겠군.
객관주의 철학 중 후자의 입장은 ㄱ과 ㄴ에 동의하겠군.
객관주의 철학 중 후자의 입장은 ㄷ에 동의하지 않고, ㄹ에 동의하겠군.
객관주의 철학 중 후자의 입장은 ㄴ에 동의하지 않고, ㄷ에 동의하겠군.
윗글을 바탕으로 추론한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필자는 주체와 대상이 얽힘의 체험 이전에 분리된다고 보므로, 설이 비판한 중국어 방의 규칙 처리 과정도 지각 이전의 상태로 평가하겠군.
객관주의 철학은 주체와 대상의 분리를 지각 이전에 전제하므로, 환경의 변화를 탐지하는 주체가 필요하다고 본 로랜즈의 전제와 상충하겠군.
로랜즈는 인지 과정이 주체의 몸 외부로 확장된다고 보았으므로, 지각을 물질적 반응으로 이해한 객관주의 전자의 입장과 동일한 전제를 취하겠군.
로랜즈는 인지의 확장을 위해 주체와의 통합을 조건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지각 발생 이전에 주체가 확정되어 있다고 본 객관주의와 전제를 공유하겠군.
필자는 주체와 대상이 분리되기 이전에 지각이 나타난다고 보므로, 파생적 상태가 심적 상태로 변환되어야 인지가 발생한다는 로랜즈의 주장을 지지하겠군.
윗글을 바탕으로 <보기>를 이해한 내용으로 가장 적절하지 않은 것은?
기능주의에 따르면, 알파를 구성하는 물질이 인간의 뇌와 다르더라도 함수적 역할이 동일하다면 알파와 인간은 같은 의식을 가진다고 판단하겠군.
기능주의에 따르면, 알파가 사과 모양 블록을 입력받아 바구니에 넣는 출력을 완벽하게 수행했다면 인간과 동일한 함수적 역할을 수행한 것이겠군.
설에 따르면, 알파가 연산 알고리즘 규칙에 따라 정확하게 출력을 내놓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사과가 무엇인지 아는 의식을 지녔다고 볼 수 없겠군.
설에 따르면, 알파가 정해진 규칙에 따라 완벽한 출력을 내놓아 인간과 동일한 함수적 역할을 수행하므로 사과를 아는 의식을 가졌다고 평가하겠군.
동일론에 따르면, 알파가 모터를 제어하여 정확한 출력을 내놓더라도 그 물질적 구성이 뇌와 다르므로 동일한 의식을 구현한 것이 아니라고 보겠군.
[16~20]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가)
심리 철학에서 동일론은 의식이 뇌의 물질적 상태와 동일하다고 본다. 이와 달리 기능주의는 의식은 기능이며, 서로 다른 물질에서 같은 기능이 구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때 기능이란 어떤 입력이 주어졌을 때 특정한 출력을 내놓는 함수적 역할로 정의되며, 함수적 역할의 일치는 입력과 출력의 쌍이 일치함을 의미한다. 실리콘 칩으로 구성된 로봇이 찔림이라는 입력에 대해 고통을 출력으로 내놓는 기능을 가진다면, 로봇과 우리는 같은 의식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처럼 기능주의는 의식을 구현하는 물질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설(Searle)은 기능주의를 반박하는 사고 실험을 제시한다. ‘중국어 방’ 안에 중국어를 모르는 한 사람만 있다고 하자. 그는 중국어로 된 입력이 들어오면 정해진 규칙에 따라 중국어로 된 출력을 내놓는다. 설에 의하면 방 안의 사람은 중국어 사용자와 함수적 역할이 같지만 중국어를 아는 것은 아니다. 기능이 같으면서 의식은 다른 사례가 있다는 것이다.
동일론, 기능주의, 설은 모두 의식에 대한 논의를 의식을 구현하는 몸의 내부로만 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의식의 하나인 ‘인지’ 즉 ‘무언가를 알게 됨’은 몸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과 맞물려 벌어진다. 기억나지 않는 정보를 노트북에 저장된 파일을 열람하여 확인하는 것이 한 예이다. 로랜즈의 확장 인지 이론은 이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그에 따르면 인지 과정은 주체에게 ‘심적 상태’가 생겨나게 하는 과정이다. 기억이나 믿음이 심적 상태의 예이다. 심적 상태는 어떤 것에도 의존함이 없이 주체에게 의미를 나타낸다. 예를 들어, 무언가를 기억하는 사람은 자기의 기억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아무것에도 의존할 필요가 없다. 이와 달리 ‘파생적 상태’는 주체의 해석에 의존해서만 또는 사회적 합의에 의존해서만 의미를 나타내는 상태로 정의된다. 앞의 예에서 노트북에 저장된 정보는 전자적 신호가 나열된 상태로서 파생적 상태이다. 주체에 의해 열람된 후에도 노트북의 정보는 여전히 파생적 상태이다. 하지만 열람 후 주체에게는 기억이 생겨난다. 로랜즈에게 인지 과정은 파생적 상태가 심적 상태로 변환되는 과정이 아니라, 파생적 상태를 조작함으로써 심적 상태를 생겨나게 하는 과정이다. 심적 상태가 주체의 몸 외부로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 심적 상태를 생겨나게 하는 인지 과정이 확장되는 것이다. 이러한 확장된 인지 과정은 인지 주체의 것일 때에만, 다시 말해 환경의 변화를 탐지하고 그에 맞춰 행위를 조절하는 주체와 통합되어 있을 때에만 성립할 수 있다. 즉 로랜즈에게 ㉮주체 없는 인지란 있을 수 없다. 확장 인지 이론은 의식의 문제를 몸 안으로 한정하지 않고 바깥으로까지 넓혀 설명한다는 의의를 지닌다.
(나)
일반적으로 ‘지각’이란 몸의 감각 기관을 통해 사물에 대해 아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지각을 분석할 때 두 가지 사실에 직면한다. 첫째, 그 사물과 내 몸은 물질세계에 있다. 둘째, 그 사물에 대한 나의 의식은 물질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 있다. 즉 몸으로서의 나는 사물과 같은 세계에 속하는 동시에 의식으로서의 나는 사물과 다른 세계에 속한다.
이에 대한 객관주의 철학의 입장은 두 가지로 나뉜다. 의식을 포함한 모든 것을 물질로 환원하여 의식은 물질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거나, 의식을 물질과 구분되는 독자적 실체로 규정함으로써 의식과 물질의 본질적 차이를 주장한다. 전자에 의하면 지각은 사물로부터의 감각 자극에 따른 주체의 물질적 반응으로 이해되며, 후자에 의하면 지각은 감각된 사물에 대한 주체 즉 의식의 판단으로 이해된다. 이처럼 양자 모두 주체와 대상의 분리를 전제하고 지각을 이해한다. 주체와 대상은 지각 이전에 이미 확정되어 각각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각은 주체와 대상이 각자로서 존재하기 이전에 나타나는 얽힘의 체험이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과 손이 맞닿을 때 내가 누군가의 손을 만지는 동시에 나의 손 역시 누군가에 의해 만져진다. 감각하는 것이 동시에 감각되는 것이 되는 얽힘의 순간에, 나는 나와 대상을 확연히 구분한다. 지각이라는 얽힘의 작용이 있어야 주체와 대상이 분리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주체와 대상은 지각이 일어난 이후 비로소 확정된다. 따라서 지각과 감각은 서로 구분되지 않는다.
지각은 물질적 반응이나 의식의 판단이 아니라, 내 몸의 체험이다. 지각은 나의 몸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고, 지각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은 모두 나의 몸이다.
윗글을 이해한 내용으로 가장 적절하지 않은 것은?
기능주의는 특정한 입력과 출력의 쌍이 일치하는 함수적 역할이 동일하다면 서로 다른 물질로 이루어졌더라도 동일한 의식을 구현하게 된다고 본다.
객관주의 철학에서 의식을 독자적 실체로 규정하는 입장은 지각을 감각된 사물에 대한 주체 즉 의식의 독자적인 판단 과정으로 파악하여 이해한다.
필자는 내가 누군가의 손을 만지는 동시에 나의 손 역시 타인에 의해 만져지는 얽힘의 작용이 일어난 이후에 비로소 주체와 대상이 분리된다고 본다.
로랜즈는 확장 인지 이론이 성립하기 위해 주체의 심적 상태가 몸 외부의 환경으로 직접 확장되어 주변 환경과 완전히 하나로 통합되어야 있다고 본다.
설은 중국어 방의 사례를 들어 정해진 규칙에 따라 출력을 내놓아 기능이 일치하더라도 그 안에 중국어를 아는 의식은 완전히 부재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윗글을 참고할 때, ㉮의 이유로 가장 적절한 것은?
심적 상태가 외부로 확장되기 위해서는 파생적 상태가 심적 상태로 온전히 변환되는 절대적인 과정이 필수적으로 요구되기 때문이다.
주체와 대상이 지각 이전에 이미 확정되어 각각 독립적으로 분리된 상태에서 파생적 상태에 대한 주체의 조작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확장된 인지 과정은 환경의 변화를 탐지하고 그에 맞춰 자신의 행위를 조절하는 인지 주체와 통합되어 있을 때에만 성립하기 때문이다.
파생적 상태는 주체의 해석이나 사회적 합의가 없더라도 노트북의 정보처럼 독립적이고 온전한 의미를 스스로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확장 인지 이론에서 주체의 몸 내부로 국한되었던 의식이 외부 세계에서 일어나는 감각 자극에 대한 물리적 반응으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윗글을 읽은 학생의 반응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동일론의 관점에 따르면, 의식을 단순히 뇌의 물질적 상태로 국한하기 때문에 뇌가 아닌 다른 물질로 구성된 존재가 정해진 출력을 내놓더라도 의식을 가졌다고 인정하지 않겠군.
설의 관점에 따르면, 중국어 방의 사람이 완벽한 중국어 출력을 내놓더라도 그 의미를 해석하지 못하는 것처럼 특정 규칙의 수행만으로는 온전한 의식이 보장될 수 없다고 평가하겠군.
객관주의 중 의식을 독자적 실체로 규정하는 입장에서는, 내가 책상의 질감을 느끼는 지각 작용을 수행할 때 그 사물에 대한 나의 의식이 물질세계와 확연히 분리되어 있다고 이해하겠군.
로랜즈의 관점에서는, 인지 주체가 노트북에 저장된 정보를 열람하여 파생적 상태를 조작하더라도 그 정보는 주체와 독립된 외부 환경에 머물기 때문에 심적 상태를 생겨나게 할 수 없겠군.
필자 관점에서는, 지각이 사물로부터의 자극에 대한 기계적 반응이나 고차원적인 정신의 판단이 아니라 오직 살아 숨 쉬는 나의 몸을 통해 이루어지는 생생한 체험의 과정이라고 판단하겠군.
윗글을 바탕으로 추론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로랜즈는 인지 과정을 몸 바깥으로 확장하여 설명하면서도 환경의 변화를 탐지하는 주체와의 통합을 인지 과정 성립의 조건으로 삼겠군.
필자는 감각하는 것이 동시에 감각되는 얽힘의 작용이 지각이며 이 얽힘 이후에 주체와 대상이 분리되므로 지각과 감각을 구분하지 않겠군.
객관주의 철학은 의식을 물질로 환원하든 독자적 실체로 규정하든 지각 발생 이전에 주체와 대상의 분리를 전제한다는 공통의 한계를 지니겠군.
설은 방 안의 사람이 정해진 규칙에 따라 출력을 내놓는 실험을 통해 함수적 역할의 일치가 의식의 존재를 온전히 보장하지 않음을 주장하겠군.
객관주의 철학이 지각 현상을 분석할 때 마주하는 모순은, 지각하는 주체의 몸과 감각되는 대상인 사물이 서로 분리된 별개의 차원에 속한다는 전제에서 비롯되겠군.
윗글을 바탕으로 <보기>의 학자 A와 B의 주장을 이해한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학자 A는 객관주의 중 전자의 입장과 유사하게 지각이라는 얽힘의 작용이 일어난 이후에 주체와 대상이 온전히 분리된다고 보겠군.
학자 B는 객관주의 중 후자의 입장과 달리 비물질적인 정신의 판단을 거친 이후에 감각하는 주체와 감각되는 대상이 확정된다고 보겠군.
학자 A와 B는 모두 지각이라는 얽힘의 체험이 선행되어야만 비로소 주체와 대상이 물질세계에서 확연히 구분될 수 있다는 견해를 수용하겠군.
학자 A와 B는 의식을 물질로 볼 것인지에서 대립하지만, 두 학자 모두 지각 이전에 주체와 대상이 이미 확정되어 있다는 전제를 공유하겠군.
필자는 학자 A가 주장하는 신경 세포의 변화와 학자 B가 주장하는 정신의 판단이 서로 결합될 때 지각과 감각이 명확히 구분된다고 평가하겠군.
지문 분석
이 글은 사람의 의식과 지각이 어떤 원리로 일어나는지를 철학적으로 깊이 있게 다루는 글입니다. (가)는 의식의 범위가 몸 안을 넘어 몸 밖으로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나)는 지각이 일어날 때 나와 대상 중 무엇이 먼저 존재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합니다. 각 철학적 입장의 차이점과 지각이 일어나는 순서에 집중하여 읽어야 합니다.
# (가) 문단1 : 동일론과 기능주의의 대립
“심리 철학에서 동일론은 의식이 뇌의 물질적 상태와 동일하다고 본다.”
첫 문장은 동일론이라는 입장의 정의를 제시합니다. 동일론은 사람의 의식을 철저하게 뇌라는 물질 그 자체로 취급합니다. 이는 이어지는 기능주의와 대비되는 기준점이 됩니다.
“이와 달리 기능주의는 의식은 기능이며, 서로 다른 물질에서 같은 기능이 구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문장은 동일론과 반대되는 기능주의의 주장을 소개합니다. 기능주의는 의식이 물질이 아니라 기능 그 자체라고 봅니다. 따라서 뇌가 아닌 전혀 다른 물질로 만들어진 존재도 같은 기능을 한다면 의식이 있다고 인정하게 됩니다.
“이때 기능이란 어떤 입력이 주어졌을 때 특정한 출력을 내놓는 함수적 역할로 정의되며, 함수적 역할의 일치는 입력과 출력의 쌍이 일치함을 의미한다.”
방금 인용한 내용은 기능주의에서 말하는 기능의 뜻을 구체적인 조건으로 풀어 설명합니다. 특정한 입력이 들어올 때 정해진 출력이 나오는 작용이 똑같다면 기능이 일치한다고 봅니다. 이는 다음 문장에 등장할 로봇의 예시를 이해하는 핵심 기준이 됩니다.
“실리콘 칩으로 구성된 로봇이 찔림이라는 입력에 대해 고통을 출력으로 내놓는 기능을 가진다면, 로봇과 우리는 같은 의식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 문장은 앞서 설명한 기능의 일치를 구체적인 상황에 적용한 예시입니다. 인간의 뇌가 아닌 금속 칩으로 만들어진 로봇이라도 찔림이라는 원인에 대해 고통이라는 결과를 낸다면 인간과 같은 의식을 가진다고 가정합니다. 이를 통해 의식의 존재를 판별하는 기능주의의 기준을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기능주의는 의식을 구현하는 물질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일문단의 마지막 문장은 기능주의의 핵심적인 결론을 요약합니다. 의식을 만들어내는 바탕이 인간의 고기 뇌이든 로봇의 금속 칩이든 상관없다는 뜻입니다. 이 결론은 바로 다음 문단에서 강력한 비판의 대상이 될 준비를 마칩니다.
# (가) 문단2 : 설의 기능주의 비판
“설은 기능주의를 반박하는 사고 실험을 제시한다.”
이 문장은 글의 흐름을 기능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전환합니다. 설이라는 인물이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실험을 통해 기능주의의 허점을 찌르려 합니다. 이 실험의 내용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주목해야 합니다.
“‘중국어 방’ 안에 중국어를 모르는 한 사람만 있다고 하자.”
설이 제안한 실험의 구체적인 상황 설정입니다. 중국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실험의 주인공으로 내세웁니다. 이 조건은 나중에 기능주의의 논리를 무너뜨리는 결정적인 무기가 됩니다.
“그는 중국어로 된 입력이 들어오면 정해진 규칙에 따라 중국어로 된 출력을 내놓는다.”
방 안의 사람은 뜻을 모르더라도 규칙에 따라 모양만 보고 답을 찾아 밖으로 내보냅니다. 이는 앞 문단에서 살펴본 기능주의의 조건, 즉 입력과 출력의 쌍이 일치하는 상황을 그대로 재현한 것입니다.
“설에 의하면 방 안의 사람은 중국어 사용자와 함수적 역할이 같지만 중국어를 아는 것은 아니다.”
실험의 결과이자 설의 핵심 주장입니다. 방 안의 사람은 겉보기에 완벽한 출력을 내놓으므로 중국어 사용자와 기능이 같습니다. 하지만 속으로는 중국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진짜 의식은 없다는 뜻입니다.
“기능이 같으면서 의식은 다른 사례가 있다는 것이다.”
이 문장은 설의 사고 실험이 도출한 최종 결론입니다. 기능이 일치하면 무조건 의식도 같아야 한다는 기능주의의 주장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증거를 찾아낸 것입니다. 이로써 기능주의의 논리는 큰 타격을 입게 됩니다.
기능주의의 완벽해 보이는 논리가 여기서 무너집니다. 입력과 출력이 같으면 의식이 같다는 기능주의의 핵심 조건을 그대로 충족했는데도, 실제로는 뜻을 전혀 모르는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논리적 빈틈을 파고드는 반박의 과정을 잘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 개념·관점이 열거되면 이들 간의 차이점에 중점을 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표의 형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가) 문단3 : 의식 논의의 확장과 로랜즈 이론 도입
“동일론, 기능주의, 설은 모두 의식에 대한 논의를 의식을 구현하는 몸의 내부로만 한정하고 있다.”
이 문장은 앞서 다룬 세 가지 철학적 입장이 가진 공통된 한계를 지적합니다. 세 입장은 서로 치열하게 다투었지만, 결국 의식이라는 현상이 몸 안에서만 일어난다고 믿었다는 점에서는 똑같습니다. 이는 새로운 이론이 등장할 발판이 됩니다.
“하지만 의식의 하나인 ‘인지’ 즉 ‘무언가를 알게 됨’은 몸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과 맞물려 벌어진다.”
여기서 글의 방향이 크게 바뀝니다. 무언가를 아는 행위는 몸 안에서 혼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몸 바깥의 세상과 함께 일어난다고 주장합니다. 기존의 상식을 깨고 의식의 범위를 몸 밖으로 넓히는 선언입니다.
여기서 글의 초점이 완전히 바뀝니다. 이전까지는 의식이 무엇인지에 대해 싸웠다면, 이제는 무언가를 아는 행위가 일어나는 무대가 몸 안인지 밖인지로 논의가 확장되었습니다. 새로운 기준이 세워진 것입니다.
“기억나지 않는 정보를 노트북에 저장된 파일을 열람하여 확인하는 것이 한 예이다.”
몸 바깥과 맞물려 인지가 일어나는 현상을 쉽게 보여주는 예시입니다. 내 머릿속에 없는 정보를 외부의 물건인 노트북에서 찾아보는 행동이 바로 인지 과정의 일부라는 뜻입니다. 일상적인 행동이 철학적 논의로 연결됩니다.
“로랜즈의 확장 인지 이론은 이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이 문단에서 제기된 새로운 관점을 체계적으로 설명할 주인을 소개합니다. 로랜즈라는 학자의 이론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며, 앞으로 이 이론이 어떻게 외부와 몸 안을 연결하는지 자세히 다루어질 것입니다.
# (가) 문단4 : 로랜즈의 확장 인지 메커니즘
“그에 따르면 인지 과정은 주체에게 ‘심적 상태’가 생겨나게 하는 과정이다.”
로랜즈가 정의하는 인지 과정의 목적을 보여줍니다. 외부와 연결되든 어떻든 간에, 결국 인지 과정의 최종 결과물은 사람에게 심적 상태라는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 심적 상태의 뜻이 이어질 것입니다.
“기억이나 믿음이 심적 상태의 예이다.”
심적 상태라는 낯선 용어를 친숙한 단어로 연결해 줍니다. 우리가 머릿속에 무언가를 담아두거나 옳다고 생각하는 상태가 모두 심적 상태에 해당합니다. 이는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심적 상태는 어떤 것에도 의존함이 없이 주체에게 의미를 나타낸다.”
심적 상태의 가장 중요한 성질을 규정합니다. 내 머릿속에 있는 기억은 다른 무언가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나 스스로 바로 뜻을 이해할 수 있다는 독립성을 가집니다. 이는 곧 등장할 파생적 상태와 완벽하게 대비되는 특징입니다.
“예를 들어, 무언가를 기억하는 사람은 자기의 기억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아무것에도 의존할 필요가 없다.”
앞 문장의 독립성을 다시 한번 일상적인 상황으로 풀어냅니다. 내가 어제 먹은 점심을 떠올릴 때 남에게 묻거나 사전을 찾아볼 필요가 없는 것처럼, 심적 상태는 그 자체로 온전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와 달리 ‘파생적 상태’는 주체의 해석에 의존해서만 또는 사회적 합의에 의존해서만 의미를 나타내는 상태로 정의된다.”
심적 상태와 반대되는 파생적 상태의 뜻을 정의합니다. 파생적 상태는 스스로 뜻을 전달하지 못하고 누군가 읽고 해석해주거나 사회적인 약속이 있어야만 비로소 의미가 생기는 불완전한 상태입니다. 조건이 붙어야만 성립한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앞의 예에서 노트북에 저장된 정보는 전자적 신호가 나열된 상태로서 파생적 상태이다.”
노트북 예시를 파생적 상태라는 개념에 정확히 대입합니다. 노트북 안의 파일은 그저 기계적인 신호일 뿐이어서 누군가 읽어주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으므로 파생적 상태에 해당합니다. 이론과 실제 사례가 연결되는 부분입니다.
“주체에 의해 열람된 후에도 노트북의 정보는 여전히 파생적 상태이다.”
이 문장은 학생들이 흔히 저지르는 오해를 차단합니다. 사람이 노트북 화면을 보았다고 해서 노트북 안의 신호가 갑자기 스스로 의미를 가지는 존재로 변신하지는 않습니다. 외부의 정보는 끝까지 외부의 정보로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열람 후 주체에게는 기억이 생겨난다.”
노트북의 정보는 그대로지만, 그것을 바라본 사람의 머릿속에는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음을 밝힙니다. 비어있던 머릿속에 없던 기억이 새롭게 태어난 것입니다. 이로써 외부와 내부의 역할이 명확히 구분됩니다.
“로랜즈에게 인지 과정은 파생적 상태가 심적 상태로 변환되는 과정이 아니라, 파생적 상태를 조작함으로써 심적 상태를 생겨나게 하는 과정이다.”
로랜즈 이론의 가장 핵심적인 원리가 등장합니다. 외부 정보가 내 머릿속으로 이동하여 기억으로 형태를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외부 정보를 도구처럼 다루고 조작하는 행동을 통해 내 머릿속에 새로운 기억을 창조해내는 과정입니다.
이 부분에서 학생들이 큰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노트북의 정보가 머릿속으로 들어와 기억으로 성질을 바꾸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지문은 명시적으로 변환되는 것이 아니라고 부정합니다. 정보는 원래 상태 그대로 남아있고, 그것을 보고 내 머릿속에 새로운 기억이 창조되는 것입니다.
“심적 상태가 주체의 몸 외부로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 심적 상태를 생겨나게 하는 인지 과정이 확장되는 것이다.”
무엇이 몸 밖으로 나아가는 것인지 그 대상을 정확히 짚어줍니다. 기억 그 자체가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트북을 보고 조작하는 일련의 행동과 흐름이 몸 밖으로 뻗어나간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확장된 인지 과정은 인지 주체의 것일 때에만, 다시 말해 환경의 변화를 탐지하고 그에 맞춰 행위를 조절하는 주체와 통합되어 있을 때에만 성립할 수 있다.”
인지 과정이 밖으로 뻗어나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필수 조건을 제시합니다. 외부 환경을 살피고 자신의 행동을 조절할 수 있는 살아있는 중심 존재와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야만 이 모든 과정이 가능합니다. 확장을 위해 중심이 튼튼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즉 로랜즈에게 주체 없는 인지란 있을 수 없다.”
앞선 필수 조건을 단호한 문장으로 못 박습니다. 인지가 아무리 밖으로 확장되더라도 그 모든 것을 이끄는 사람, 즉 주체가 없다면 인지는 아예 일어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입니다. 주체의 절대적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확장 인지 이론은 의식의 문제를 몸 안으로 한정하지 않고 바깥으로까지 넓혀 설명한다는 의의를 지닌다.”
글의 전반부인 가 지문을 마무리하며 로랜즈 이론의 가치를 평가합니다. 수많은 철학자들이 몸 안쪽만 바라보고 있을 때, 과감하게 몸 바깥의 세상까지 논의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큰 성과가 있습니다.
어떤 과정이 주어지면, 이를 여러 단계로 쪼개어 순차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과 같이 화살표로 이어지는 여러 단계들을 떠올리면서 읽도록 합시다.

# (나) 문단1 : 지각의 정의와 딜레마
“일반적으로 ‘지각’이란 몸의 감각 기관을 통해 사물에 대해 아는 것을 의미한다.”
나 지문을 시작하며 지각이라는 단어의 일반적인 뜻을 먼저 밝힙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져서 바깥의 물건을 인식하는 흔한 상황을 지각이라고 부릅니다. 이 평범한 정의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됩니다.
“이러한 지각을 분석할 때 두 가지 사실에 직면한다.”
지각이라는 현상을 깊이 따져보면 두 가지 모순된 상황을 만나게 됨을 안내합니다. 평범해 보이는 행동 속에 철학적으로 복잡한 문제가 숨어 있다는 뜻입니다.
“첫째, 그 사물과 내 몸은 물질세계에 있다.”
우리가 마주하는 첫 번째 사실은 눈에 보이는 껍데기에 대한 것입니다. 내가 바라보는 물건이나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육체는 모두 눈으로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똑같은 현실의 물질이라는 점입니다.
“둘째, 그 사물에 대한 나의 의식은 물질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 있다.”
두 번째 사실은 보이지 않는 정신에 대한 것입니다. 내 몸은 물질이지만, 그 사물을 알아채고 생각하는 내 머릿속의 마음은 만질 수 없는 전혀 다른 차원의 세상에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즉 몸으로서의 나는 사물과 같은 세계에 속하는 동시에 의식으로서의 나는 사물과 다른 세계에 속한다.”
앞선 두 가지 사실이 합쳐지면서 발생하는 난감한 상황을 정리합니다. 나라는 하나의 존재가, 육체로는 사물과 같은 세상에 살면서 정신으로는 사물과 단절된 다른 세상에 사는 반쪽짜리 분열을 겪게 됩니다.
# (나) 문단2 : 객관주의 철학의 두 입장과 공통된 한계
“이에 대한 객관주의 철학의 입장은 두 가지로 나뉜다.”
앞 문단에서 발생한 육체와 정신의 분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객관주의 철학을 소개합니다. 이 철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두 가지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합니다. 각각의 길이 무엇인지 살펴봐야 합니다.
“의식을 포함한 모든 것을 물질로 환원하여 의식은 물질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거나, 의식을 물질과 구분되는 독자적 실체로 규정함으로써 의식과 물질의 본질적 차이를 주장한다.”
객관주의의 두 가지 해결책을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첫 번째 길은 정신도 결국 물질의 일종일 뿐이라며 모든 것을 하나로 통일하는 길입니다. 두 번째 길은 정신과 물질은 아예 뿌리부터 다른 별개의 것이라며 철저히 나누는 길입니다.
“전자에 의하면 지각은 사물로부터의 감각 자극에 따른 주체의 물질적 반응으로 이해되며, 후자에 의하면 지각은 감각된 사물에 대한 주체 즉 의식의 판단으로 이해된다.”
두 가지 길에 따라 지각을 해석하는 방식도 달라짐을 설명합니다. 모든 것을 물질로 보는 쪽은 지각을 그저 기계적인 육체의 반응으로 봅니다. 반면 둘을 분리하는 쪽은 지각을 고차원적인 정신의 판단으로 높여서 봅니다.
“이처럼 양자 모두 주체와 대상의 분리를 전제하고 지각을 이해한다.”
여기서 객관주의 철학의 치명적인 문제점이 드러납니다. 두 입장이 서로 치열하게 싸우는 것 같지만, 사실 나라는 존재와 바깥의 사물이 이미 남남으로 갈라져 있다는 똑같은 밑바탕을 깔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은 지각 이전에 이미 확정되어 각각 존재한다는 것이다.”
객관주의가 공유하는 공통된 밑바탕을 구체적인 시간 순서로 꼬집습니다. 내가 무언가를 지각하기 한참 전부터 나와 사물은 이미 각자의 자리에 완성된 채로 따로 존재한다고 믿는 오류입니다. 이 순서는 다음 문단에서 완전히 뒤집힙니다.
# (나) 문단3 : 얽힘의 체험으로서의 지각
“하지만 지각은 주체와 대상이 각자로서 존재하기 이전에 나타나는 얽힘의 체험이다.”
이 글을 쓴 필자의 진짜 주장이 등장합니다. 필자는 객관주의의 시간 순서를 정면으로 거부합니다. 지각은 나와 사물이 따로 떨어져 완성되기도 전에 서로 복잡하게 뒤엉켜 하나가 되는 경험이라고 새롭게 정의합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과 손이 맞닿을 때 내가 누군가의 손을 만지는 동시에 나의 손 역시 누군가에 의해 만져진다.”
앞선 얽힘의 의미를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손잡기 예시입니다. 두 사람의 손이 닿는 순간, 내가 상대를 일방적으로 만지는 것이 아니라 나 역시 동시에 상대방에게 만져지는 쌍방향의 교류가 발생함을 설명합니다.
“감각하는 것이 동시에 감각되는 것이 되는 얽힘의 순간에, 나는 나와 대상을 확연히 구분한다.”
손을 잡는 것처럼 서로 뒤엉키는 그 찰나의 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변화가 생깁니다. 그제야 비로소 나는 어디까지가 내 손이고 어디부터가 상대의 손인지 경계선을 긋고 나눌 수 있게 됩니다.
“지각이라는 얽힘의 작용이 있어야 주체와 대상이 분리될 수 있다.”
필자의 주장을 인과 관계로 명확히 정리합니다. 지각이라는 서로 부딪치고 얽히는 사건이 원인으로 작용해야만, 그 결과로 나와 대상이 나누어지고 분리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지각이 먼저라는 점이 핵심입니다.
“다시 말해 주체와 대상은 지각이 일어난 이후 비로소 확정된다.”
방금 전 문장을 시간의 순서로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지각이라는 사건이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나와 대상의 모습이 완성되고 결정됩니다. 객관주의 철학의 순서를 완벽하게 뒤집어버린 결론입니다.
시간적 순서가 완전히 뒤집히는 결정적인 순간입니다. 나와 대상이 먼저 있고 지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얽히는 지각 작용이 먼저 일어난 이후에야 그 결과로 나와 대상이 확정되는 것입니다. 상식적인 시간 감각을 버리고 지문의 논리를 따라야 합니다.
“따라서 지각과 감각은 서로 구분되지 않는다.”
이 문단 논리의 최종 종착지입니다. 지각이 고차원적인 정신의 작용이 아니라 몸이 부딪치며 얽히는 체험이라면, 결국 지각은 피부로 느끼는 감각과 똑같은 층위의 사건이 됩니다. 두 개념을 똑같은 것으로 취급하라는 선언입니다.
어떤 과정이 주어지면, 이를 여러 단계로 쪼개어 순차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과 같이 화살표로 이어지는 여러 단계들을 떠올리면서 읽도록 합시다.

# (나) 문단4 : 내 몸의 체험으로서의 지각
“지각은 물질적 반응이나 의식의 판단이 아니라, 내 몸의 체험이다.”
글 전체를 마무리하며 객관주의의 두 가지 입장을 모두 거부합니다. 지각은 단순한 기계적 반응도 아니고 머릿속의 고상한 생각도 아니며, 오직 나의 몸 전체가 겪어내는 생생한 경험 그 자체라고 확정 짓습니다.
“지각은 나의 몸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고, 지각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은 모두 나의 몸이다.”
마지막 문장은 지각을 일으키고 주도하는 유일한 주인공이 바로 육체를 가진 몸임을 선언합니다. 머릿속의 정신이나 분리된 사물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몸이 세계를 인식하는 중심축이라는 점을 묵직하게 전달하며 글이 끝납니다.
(가)의 1문단에 따르면 "심리 철학에서 동일론은 의식이 뇌의 물질적 상태와 동일하다고 본다"고 되어있으므로 참이다.
(가)의 1문단에 따르면 의식을 구현하는 물질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보는 입장은 동일론이 아니라 기능주의이므로 거짓이다.
(가)의 1문단에 따르면 기능주의는 "서로 다른 물질에서 같은 기능이 구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고 되어있으므로 참이다.
(가)의 1문단에 따르면 "함수적 역할의 일치는 입력과 출력의 쌍이 일치함을 의미한다"고 되어있으므로 참이다.
(가)의 2문단에 따르면 "설(Searle)은 기능주의를 반박하는 사고 실험을 제시한다. ‘중국어 방’ 안에..."고 되어있으므로 참이다.
(가)의 2문단에 따르면 "방 안의 사람은 중국어 사용자와 함수적 역할이 같지만"이라고 되어있으므로 거짓이다.
(가)의 2문단에 따르면 설은 기능주의를 반박하며 "기능이 같으면서 의식은 다른 사례가 있다"고 주장하므로 거짓이다.
(가)의 3문단에 따르면 "동일론, 기능주의, 설은 모두 의식에 대한 논의를 의식을 구현하는 몸의 내부로만 한정하고 있다"고 되어있으므로 참이다.
(가)의 3문단에 따르면 "의식의 하나인 ‘인지’ 즉 ‘무언가를 알게 됨’은 몸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과 맞물려 벌어진다"고 되어있으므로 거짓이다.
(가)의 4문단에 따르면 "인지 과정은 주체에게 ‘심적 상태’가 생겨나게 하는 과정이다"라고 되어있으므로 참이다.
(가)의 4문단에 따르면 "기억이나 믿음이 심적 상태의 예이다"라고 되어있으므로 참이다.
(가)의 4문단에 따르면 "심적 상태는 어떤 것에도 의존함이 없이 주체에게 의미를 나타낸다"고 되어있으므로 거짓이다.
(가)의 4문단에 따르면 "‘파생적 상태’는 주체의 해석에 의존해서만 또는 사회적 합의에 의존해서만 의미를 나타내는 상태"라고 되어있으므로 참이다.
(가)의 4문단에 따르면 "노트북에 저장된 정보는 전자적 신호가 나열된 상태로서 파생적 상태이다"라고 되어있으므로 참이다.
(가)의 4문단에 따르면 "주체에 의해 열람된 후에도 노트북의 정보는 여전히 파생적 상태이다"라고 되어있으므로 거짓이다.
(가)의 4문단에 따르면 "인지 과정은 파생적 상태가 심적 상태로 변환되는 과정이 아니라, 파생적 상태를 조작함으로써 심적 상태를 생겨나게 하는 과정이다"라고 되어있으므로 참이다.
(가)의 4문단에 따르면 "심적 상태가 주체의 몸 외부로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 심적 상태를 생겨나게 하는 인지 과정이 확장되는 것이다"라고 되어있으므로 거짓이다.
(가)의 4문단에 따르면 "로랜즈에게 주체 없는 인지란 있을 수 없다"고 되어있으므로 거짓이다.
(가)의 4문단에 따르면 "확장 인지 이론은 의식의 문제를 몸 안으로 한정하지 않고 바깥으로까지 넓혀 설명한다는 의의를 지닌다"고 되어있으므로 참이다.
(나)의 1문단에 따르면 지각을 분석할 때 마주하는 첫째 사실로 "그 사물과 내 몸은 물질세계에 있다"고 되어있으므로 참이다.
(나)의 1문단에 따르면 "사물에 대한 나의 의식은 물질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 있다"며 사물과 다른 세계에 속한다고 하였으므로 거짓이다.
(나)의 2문단에 따르면 객관주의 철학의 입장 중 하나로 "의식을 포함한 모든 것을 물질로 환원하여 의식은 물질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고 되어있으므로 참이다.
(나)의 2문단에 따르면 의식을 물질로 환원하는 전자의 입장은 지각을 "사물로부터의 감각 자극에 따른 주체의 물질적 반응"으로 이해하므로 거짓이다.
(나)의 2문단에 따르면 의식을 독자적 실체로 규정하는 후자의 입장은 지각을 "감각된 사물에 대한 주체 즉 의식의 판단으로 이해된다"고 되어있으므로 참이다.
(나)의 2문단에 따르면 객관주의의 두 입장 모두 "주체와 대상의 분리를 전제하고 지각을 이해한다"고 되어있으므로 참이다.
(나)의 2문단에 따르면 객관주의 철학은 "주체와 대상은 지각 이전에 이미 확정되어 각각 존재한다"고 주장하므로 거짓이다.
(나)의 3문단에 따르면 "지각은 주체와 대상이 각자로서 존재하기 이전에 나타나는 얽힘의 체험이다"라고 되어있으므로 참이다.
(나)의 3문단에 따르면 "지각이라는 얽힘의 작용이 있어야 주체와 대상이 분리될 수 있다"고 되어있으므로 참이다.
(나)의 3문단에 따르면 "따라서 지각과 감각은 서로 구분되지 않는다"고 되어있으므로 거짓이다.
(나)의 4문단에 따르면 "지각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은 모두 나의 몸이다"라고 되어있으므로 참이다.
(가)의 1문단에 따르면 "심리 철학에서 동일론은 의식이 뇌의 물질적 상태와 동일하다고 본다"고 되어있으므로 정답은 동일론이다.
(가)의 1문단에 따르면 "기능이란 어떤 입력이 주어졌을 때 특정한 출력을 내놓는 함수적 역할로 정의"된다고 되어있으므로 정답은 기능이다.
(가)의 2문단에 따르면 "설(Searle)은 기능주의를 반박하는 사고 실험을 제시한다. ‘중국어 방’ 안에..."고 되어있으므로 정답은 중국어 방이다.
(가)의 4문단에 따르면 "심적 상태는 어떤 것에도 의존함이 없이 주체에게 의미를 나타낸다"고 되어있으므로 정답은 심적 상태이다.
(가)의 4문단에 따르면 "‘파생적 상태’는 주체의 해석에 의존해서만 또는 사회적 합의에 의존해서만 의미를 나타내는 상태로 정의된다"고 되어있으므로 정답은 파생적 상태이다.
(가)의 4문단에 따르면 의식의 문제를 몸 바깥으로 넓혀 설명하는 로랜즈의 이론을 "확장 인지 이론"이라고 부르므로 정답은 확장 인지 이론이다.
(나)의 1문단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지각’이란 몸의 감각 기관을 통해 사물에 대해 아는 것을 의미한다"고 되어있으므로 정답은 지각이다.
(나)의 2문단에 따르면 이러한 입장을 "객관주의 철학의 입장"으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정답은 객관주의 철학이다.
(나)의 3문단에 따르면 "지각은 주체와 대상이 각자로서 존재하기 이전에 나타나는 얽힘의 체험이다"라고 되어있으므로 정답은 얽힘의 체험이다.
(나)의 4문단에 따르면 "지각은 물질적 반응이나 의식의 판단이 아니라, 내 몸의 체험이다. 지각은 나의 몸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고"라고 되어있으므로 정답은 지각이다.
가 지문은 의식의 범주를 분류하여 구체적 사례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이론적 한계를 보완하는 새 이론을 설명하고 있으며, 나 지문은 지각의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단계별로 분석하고 있지 않다.
가 지문은 역사적 발생 순서에 따른 통시적 나열이 아니라 병렬적 관점 비교를 수행하고 있으며, 나 지문 역시 특정 철학자의 생애를 중심으로 학문의 발전 과정을 서술하고 있지 않다.
가 지문은 대립하는 두 주장을 절충한 것이 아니라 기존 한계를 극복하는 확장 인지 이론을 소개하며, 나 지문은 객관주의 철학 내부의 모순을 지적하여 두 입장이 동일함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양자 모두를 비판하고 있다.
가 지문은 의식을 몸 내부로 한정한 기존 이론들의 한계를 지적하며 확장 인지 이론을 소개하고, 나 지문은 주체와 대상의 분리를 전제한 객관주의 철학을 비판하며 내 몸의 체험으로서의 지각이라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가 지문은 실험적 방법론의 타당성을 데이터로 검증하는 것이 아니며, 나 지문은 상반된 철학적 입장을 비교하여 각각의 한계를 보완할 해결책을 제안하는 것이 아니라 필자만의 독자적인 지각관을 주장하고 있다.
심적 상태 자체가 주체의 몸 바깥으로 스스로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 심적 상태를 생겨나게 하는 인지 과정이 외부 환경으로 확장되는 것입니다.
파생적 상태는 인지 과정에서 조작의 대상이 되더라도 여전히 주체의 해석 등에 의존하여 의미를 나타내는 파생적 상태를 온전히 유지합니다.
지문에 따르면 심적 상태는 어떤 것에도 의존함이 없이 독자적으로 주체에게 의미를 나타냅니다. 반면 파생적 상태는 주체의 해석이나 사회적 합의에 의존해서만 의미를 나타내는 속성을 지니므로 가장 적절한 진술입니다.
환경의 변화를 탐지하고 행위를 조절하는 것은 인지 주체의 역할이며, 확장된 인지 과정은 이러한 주체와의 통합이 필수적으로 요구됩니다.
파생적 상태인 정보는 주체에 의해 열람된 이후에도 본래의 성질을 상실하거나 탈바꿈하지 않고 여전히 파생적 상태로 남습니다.
기능주의는 동일한 함수적 역할이 동일한 의식을 필연적으로 동반한다고 주장하므로, 역할이 같아도 의식이 존재하지 않는 사례가 있다는 s3에는 결코 긍정하지 않습니다.
기능주의는 입력과 출력의 역할이 동일하다면 로봇과 인간이 완전히 같은 의식을 지닌다는 s1의 명제에 적극적으로 동의합니다.
설은 함수적 역할의 일치가 의식의 존재를 증명하지 못한다고 비판했으므로, 로봇이 같은 의식을 가진다는 s1의 명제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설은 사고 실험의 전제로서 방 안의 사람이 중국어 사용자와 동일한 함수적 역할을 수행한다는 사실 자체(s2)는 인정하고 실험을 전개했으므로 이에 동의합니다.
설은 사고 실험을 통해 함수적 역할이 완전히 동일하더라도 실제 의식이 존재하지 않을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따라서 기능적 일치가 동일한 의식을 보장한다는 s1에 반대하고, 기능이 같아도 의식이 다를 수 있다는 s3에 찬성하는 것이 가장 적절합니다.
객관주의 중 후자는 의식을 물질과 구분되는 독자적 실체로 규정하며 지각을 의식의 판단으로 이해하므로, 이는 의식이 다른 세계에 속한다는 이원론적 인식을 내포한다.
필자는 감각하는 것과 감각되는 것이 동시에 일어나는 얽힘의 작용이 있어야 주체와 대상이 확정되고 분리될 수 있다고 보았으므로, 얽힘이 없다면 확정도 일어나지 않는다.
필자는 지각이 물질적 반응이나 의식의 판단이 아니라고 부정하며, 지각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은 모두 나의 몸이라고 명시하여 몸의 주도권을 강조하고 있다.
객관주의 중 전자는 지각을 감각 자극에 따른 주체의 물질적 반응으로 이해하므로, 사물로부터 감각 자극이 먼저 발생하고 그에 따른 물질적 반응이 후행한다는 선후 관계를 전제한다.
필자는 지각이 일어난 이후 비로소 주체와 대상이 확정된다고 보았으므로, 손을 만지는 체험 이전에 주체와 대상이 이미 확정되어 각각 존재한다는 시각은 객관주의의 오류로 간주한다.
객관주의 중 전자의 입장은 지각을 사물로부터의 감각 자극에 따른 주체의 물질적 반응으로 파악하므로, 운전대와의 물리적 상호작용 역시 물질적 반응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객관주의 중 후자의 입장은 지각을 감각된 사물에 대한 의식의 독자적 판단으로 규정하므로, 화면을 보고 길을 파악하는 행위를 의식의 판단 과정으로 파악하는 것은 타당하다.
필자는 감각하는 것과 감각되는 것이 동시에 일어나는 얽힘의 작용이 일어난 이후에 비로소 주체와 대상이 확정되고 분리된다고 명시하였으므로 적절한 진술이다.
로랜즈는 인지 과정이 파생적 상태가 심적 상태로 변환되는 것이 아니라 파생적 상태를 조작하여 심적 상태를 생겨나게 하는 과정이라고 명시하였다. 따라서 A가 화면의 전자 지도를 확인하는 것은 파생적 상태가 심적 상태로 변환되는 과정이 아니다.
파생적 상태는 주체에 의해 열람된 후에도 여전히 주체의 해석에 의존해서만 의미를 나타내는 파생적 상태로 남는다. 따라서 화면의 경로 정보는 A에 의해 확인된 후에도 해석에 의존해야 의미를 나타내는 상태를 유지한다.
기능주의는 서로 다른 물질이라도 같은 함수적 역할이 구현되면 동일한 의식을 가진다고 주장하므로, 서로 다른 의식을 지니게 된다는 설명은 적절하지 않다.
설의 사고 실험은 중국어 방 안의 사람이 중국어 사용자와 동일한 함수적 역할을 수행함에도 불구하고 중국어를 아는 의식이 없다는 점을 전제하므로 오답이다.
필자는 주체와 대상의 분리를 전제하는 객관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하며, 얽힘이 발생한 이후에야 주체와 대상이 분리된다고 주장하므로 객관주의의 전제를 옹호한다는 것은 오답이다.
로랜즈는 파생적 상태를 조작함으로써 심적 상태를 생겨나게 하는 인지 과정 자체가 확장된다고 주장하며, 이 확장은 환경의 변화를 탐지하는 주체와 통합되어 있을 때에만 성립한다고 명확히 규정하였다.
지문은 동일론과 기능주의가 모두 의식에 대한 논의를 의식을 구현하는 몸의 내부로만 한정하고 있다는 한계를 지닌다고 명시하였으므로 사실과 다르다.
로랜즈의 이론은 인지 과정이 파생적 상태가 심적 상태로 변환되는 과정이 결코 아님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 자체로 주체에게 독립적인 의미를 나타내는 것은 심적 상태의 본질이며, 노트북의 정보는 해석에 의존하는 파생적 상태입니다.
이론에서 외부로 확장되는 것은 심적 상태가 아니라 이를 생겨나게 하는 인지 과정 자체이며, 파생적 상태가 독립적으로 심적 상태를 이식하는 것은 아닙니다.
파생적 상태는 주체의 해석에 의존해야만 의미를 나타냅니다. 본문은 인지 과정이 이 파생적 상태를 심적 상태로 변환시키는 것이 아니라 조작할 뿐이라고 밝혔으므로, 노트북의 정보는 열람 이후에도 여전히 주체의 해석에 의존해야 하는 본질을 유지합니다.
확장된 인지 과정은 환경의 변화를 탐지하는 주체와 반드시 통합되어야만 성립하므로, 정보 스스로 조작 기능을 갖는다는 진술은 오답입니다.
의식을 물질로 환원하는 전자의 입장은 지각을 사물의 감각 자극에 따른 반응으로 규정하므로, 외부 자극이 물리적 반응보다 선행한다고 전제합니다.
의식을 독자적 실체로 보는 입장은 물질과 의식의 본질적 차이를 주장하며, 의식이 몸이 위치한 물질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 존재함을 전제로 합니다.
객관주의 철학은 양 입장 모두 지각 이전에 주체와 대상이 이미 확정되어 각각 존재한다고 전제합니다. 지각 작용(얽힘)을 거친 이후에 분리된다고 보는 것은 필자의 관점이므로 객관주의의 시각으로는 완전히 틀린 진술입니다.
두 입장은 의식을 물질로 보느냐 아니냐에서 대립하지만, 지각이 발생하기 이전에 이미 주체와 대상이 분리되어 확정되어 있다는 전제를 동일하게 공유합니다.
객관주의 철학은 물질세계의 몸과 다른 세계의 의식이라는 이원론적 사실이 충돌하는 분열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두 가지 대안적 접근법을 보여줍니다.
기능주의는 함수적 역할이 일치하면 물질에 관계없이 동일한 의식을 가진다고 규정하므로 타당한 추론이다.
의식을 물질로 환원하는 객관주의 입장은 지각을 사물로부터의 자극에 대한 물질적 반응으로 이해하므로 난로에 대한 반사 작용을 물질적 반응으로 보는 것은 일치한다.
필자는 감각하는 것과 감각되는 것이 동시에 일어나는 얽힘의 순간 이후에 주체와 대상이 분리되고 확정된다고 보았으므로 악수의 사례에 이를 적용한 것은 적절하다.
필자는 지각이 의식의 판단이 아니라 오직 내 몸의 체험이라고 명확히 규정하였다. 지각 이전에 의식의 판단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진술은 필자의 핵심 주장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오답이다.
로랜즈는 인지 과정을 파생적 상태가 심적 상태로 변환되는 것이 아니라 파생적 상태를 조작함으로써 심적 상태를 생겨나게 하는 과정으로 정의하였으므로 적절한 반응이다.
필자는 주체와 대상이 지각이 일어난 이후 확정된다고 보았고, C 역시 진정한 주체는 마찰음이라는 얽힘 속에서 비로소 탄생한다고 주장하므로 두 관점 모두 얽힘 이전의 주체와 대상 확정을 부정한다.
주체가 감각된 사물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것은 객관주의 철학 중 후자의 입장에 해당한다. C와 필자는 모두 얽힘의 작용이 우선되어야만 주체와 대상이 확정된다고 보므로, 판단 과정을 거친 이후 얽힘이 나타난다는 진술은 인과 관계를 완전히 뒤바꾼 오답이다.
로랜즈는 인지 과정이 성립하기 위해 환경의 변화를 탐지하는 주체와의 통합이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C는 이처럼 환경과 상호작용하기 이전에 주체의 존재를 전제하는 것을 결정적 오류라고 비판하므로 적절한 진술이다.
로랜즈가 주체 없는 인지란 있을 수 없다고 본 것은 주체가 환경(대상)과 얽히기 이전에 확정되어 존재함을 의미한다. C는 이를 사전에 주체와 대상이 분리되어 존재한다는 객관주의적 전제와 같다고 지적할 것이므로 적절하다.
로랜즈의 주체는 환경의 변화를 탐지하기 이전에 이미 존재하는 주체이다. C는 이를 두고 세계와 몸이 맞닿는 최초의 마찰음에서 주체가 탄생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주체를 미리 확정한 오류라고 평가할 것이므로 적절하다.
환경의 변화를 탐지하고 그에 맞춰 자신의 행위를 조절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답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입력과 출력의 쌍이 일치하는 함수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조건으로 본문에서 답을 분명하게 찾을 수 있습니다.
의식의 독자적인 판단 작용을 내린다는 사실을 지문의 명시적 서술에서 바로 찾을 수 있습니다.
얽힘이라는 지각 작용이 먼저 일어나야만 그 이후에 대상과 분리되어 확정된다는 역전된 선후 관계로 그 이유를 충분히 찾을 수 있습니다.
동일론이 의식을 뇌의 물질적 상태로 한정한다는 사실만 있을 뿐, 뇌 이외의 다른 물질이 의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구체적 설명은 지문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필자는 주체와 대상이 물질세계에서 온전히 분리되고 확정되기 이전에 얽힘의 체험으로서 지각이 나타난다고 규정하였다.
객관주의 중 전자의 입장은 지각을 물질적 반응으로 이해하며, 감각된 사물에 대한 주체의 독자적인 의식의 판단 과정으로 정의하는 것은 후자의 입장이다.
필자는 감각하는 것과 동시에 감각되는 얽힘의 순간으로 인해 지각과 감각이 서로 구분되지 않는다고 명시하였다.
필자는 객관주의의 두 입장을 비판하며 지각이 물질적 반응이나 의식의 판단이 아니라 오직 나의 몸에 의해 이루어지는 내 몸의 체험이라고 명확히 규정하였다.
객관주의 철학의 양 입장은 주체와 대상을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양자 모두 주체와 대상의 분리를 전제하고 지각을 이해한다는 공통된 한계를 지닌다.
객관주의 철학 중 전자의 입장은 지각을 물질적 반응으로 보므로 ㄱ에 동의하지만, 지각을 감각된 사물에 대한 의식의 판단으로 보는 ㄷ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객관주의 철학 중 전자의 입장은 지각 이전에 주체와 대상이 이미 확정되어 각각 존재한다고 전제하므로 ㄴ에 동의하며, 얽힘 이후에 확정된다는 ㄹ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객관주의 철학 중 후자의 입장은 지각 이전에 주체와 대상이 확정된다는 ㄴ에 동의하지만, 지각을 물질적 반응으로 보는 ㄱ이 아니라 의식의 판단으로 이해하므로 ㄱ에 동의하지 않는다.
객관주의 철학 중 후자의 입장은 지각을 의식의 판단으로 이해하므로 ㄷ에 동의하며, 얽힘 작용 이후에 주체와 대상이 확정된다는 ㄹ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객관주의 철학 중 후자의 입장은 지각 이전에 주체와 대상의 분리를 전제하므로 ㄴ에 동의한다. 따라서 ㄴ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설명은 거짓이다.
필자는 주체와 대상이 지각이라는 얽힘의 체험 이전에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얽힘의 체험이 나타난 이후에 비로소 확정된다고 보았으므로 전제부터 거짓이다.
객관주의 철학이 주체와 대상의 분리를 사전에 전제하는 것과 로랜즈가 환경의 변화를 탐지하는 확정된 주체를 전제하는 것은 상충하는 것이 아니라 공통된 한계를 공유하는 것이다.
로랜즈는 인지 과정의 확장을 주장할 뿐 지각을 감각 자극에 따른 주체의 물질적 반응으로 이해하는 객관주의 전자의 입장과 동일한 전제를 취하는 것은 아니다.
로랜즈는 환경의 변화를 탐지하고 행위를 조절하는 인지 주체가 미리 확고히 존재하여 통합되어야 한다고 보았으며, 이는 지각 이전에 주체와 대상이 이미 확정되어 있다는 객관주의 철학의 전제와 논리적으로 일치한다.
로랜즈는 인지 과정이 파생적 상태가 심적 상태로 변환되는 과정이 아니라고 명시적으로 부정하였으므로, 로랜즈가 변환을 주장했다는 내용 자체가 거짓이다.
기능주의는 의식을 구현하는 물질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으며, 서로 다른 물질이라도 함수적 역할이 일치하면 동일한 의식을 가진다고 주장하므로 적절하다.
기능주의는 함수적 역할의 일치를 입력과 출력의 쌍이 일치하는 것으로 정의하므로, 알파가 입력을 받아 정확한 출력을 완벽하게 수행했다면 인간과 동일한 함수적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판단한다.
설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 출력을 내놓아 함수적 역할이 같더라도 실제 의식은 부재할 수 있다고 보았으므로, 알파의 연산 수행만으로는 사과를 아는 의식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설은 중국어 방 사고 실험을 통해 인간과 함수적 역할이 완전히 동일하더라도 그것이 곧 의식의 존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비판했다. 따라서 알파가 동일한 함수적 역할을 수행한다고 해서 의식을 가졌다고 평가한다는 진술은 설의 관점과 정반대이다.
동일론은 의식을 뇌의 물질적 상태와 동일한 것으로 규정하므로, 로봇 팔의 모터 등 뇌와 다른 물질적 구성을 지닌 알파가 정확한 출력을 내놓더라도 의식을 구현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기능주의는 의식을 물질과 무관한 특정한 입력과 출력의 함수적 역할로 정의하며, 이 함수적 역할만 일치하면 물질에 관계없이 동일한 의식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객관주의 철학 중 의식을 물질과 구분되는 독자적 실체로 보는 입장은 지각을 감각된 사물에 대한 의식의 판단으로 규정하므로 적절한 설명이다.
필자는 타인의 손과 맞닿는 사례를 통해 감각함과 감각됨이 동시에 일어나는 얽힘의 작용 이후에야 주체와 대상이 분리되고 확정된다고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로랜즈는 인지 과정이 주체의 몸 외부로 확장된다고 주장하였으나, 심적 상태 자체가 몸 외부로 확장되는 것은 아니라고 명시적으로 부정하였으므로 해당 진술은 거짓이다.
설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 입출력을 수행해 함수적 역할이 동일하더라도, 중국어를 앎은 존재하지 않는 반례를 통해 기능주의의 허점을 정확히 비판하고 있다.
인지 과정은 파생적 상태가 변환되는 것이 아님이 지문에 명시되었으므로 인과를 잘못 연결한 거짓 진술입니다.
주체와 대상이 지각 이전에 확정된다는 것은 (나)의 객관주의 전제일 뿐 로랜즈가 주체의 필수성을 주장한 직접적 근거가 아닙니다.
확장된 인지 과정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환경의 변화를 탐지하는 주체와 굳건히 통합되어 있어야만 비로소 기능할 수 있기 때문에, 주체 없는 인지란 존재할 수 없다는 논리가 성립합니다.
파생적 상태는 반드시 주체의 해석이나 사회적 합의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의미가 성립되므로 스스로 의미를 창출한다는 것은 거짓입니다.
물리적 반응으로의 환원은 객관주의 철학 전자의 입장이며 로랜즈의 확장 인지 이론과는 무관한 개념입니다.
동일론은 의식을 반드시 인간 뇌의 물리적 상태와 동일시하므로, 물질 구성이 다르다면 출력의 결과와 무관하게 의식을 부정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설은 사고 실험을 통해 기능적 수행(출력)이 같더라도 그 안에 앎(의식)은 부재할 수 있음을 명확히 증명했습니다.
의식을 독자적 실체로 보는 입장은 의식과 물질 세계를 엄격히 분리하는 이원론적 딜레마를 바탕으로 성립된 견해입니다.
로랜즈는 외부의 파생적 상태가 주체 안으로 들어와 변환되지는 않지만, 주체가 이를 능동적으로 '조작'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반드시 내부의 심적 상태를 성공적으로 '생겨나게'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필자는 객관주의의 두 가지 입장을 모두 단호히 거부하고, 지각이 이루어지는 유일한 주도권은 나의 생생한 몸의 체험에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로랜즈는 인지 과정이 외부로 확장됨을 주장하면서도, 환경의 변화를 탐지하고 행위를 조절하는 인지 주체와의 통합을 필수적인 조건으로 전제하였으므로 올바른 추론이다.
지문에서 필자는 지각이라는 얽힘의 작용 이후에야 주체와 대상이 분리된다는 사실을 근거로 지각과 감각이 서로 구분되지 않는다고 명시적으로 도출하였으므로 적절하다.
객관주의의 두 입장은 의식을 규정하는 본질적 시각이 다르지만 양자 모두 지각 이전에 주체와 대상이 분리되어 존재한다는 전제를 공유하고 있으므로 적절한 추론이다.
설의 중국어 방 사고 실험은 중국어 사용자와 함수적 역할이 동일하더라도 실제 의식이 존재하지 않을 수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고안되었으므로 적절하다.
지문에 따르면 객관주의가 직면하는 딜레마는 주체의 몸과 감각되는 사물이 '같은 물질세계'에 속해 있다는 명백한 사실에서 출발합니다. 육체와 사물이 서로 다른 차원에 속한다는 전제는 지문의 기본 사실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오류입니다.
학자 A는 지각을 물질적 반응으로 이해하므로 객관주의 전자의 입장과 유사하나, 이 입장은 지각 이전에 주체와 대상이 확정된다고 전제하므로 얽힘 작용 이후에 분리된다고 보는 것은 거짓이다.
학자 B는 지각을 비물질적인 정신의 판단으로 보므로 객관주의 후자의 입장과 일치하며, 이들은 지각 이전에 주체와 대상이 이미 확정된다고 전제하므로 판단을 거친 이후에 확정된다고 보는 것은 거짓이다.
지각이라는 얽힘의 체험이 선행되어야 주체와 대상이 구분될 수 있다는 견해는 필자의 독자적 주장이므로 객관주의 철학을 대변하는 학자 A와 B는 이를 수용하지 않는다.
학자 A와 B는 각각 의식을 물질로 환원하는 입장과 독자적 실체로 규정하는 입장을 대변하며 대립하지만, 객관주의 철학으로서 양자 모두 지각 이전에 주체와 대상이 확정되어 있다는 전제를 공유한다.
필자는 객관주의의 두 입장을 모두 비판하며 지각이 내 몸의 체험이라고 주장하였고, 지각과 감각이 서로 구분되지 않는다고 명시하였으므로 두 입장의 결합으로 감각이 구분된다는 것은 거짓이다.
[12~17]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가)
심리 철학에서 동일론은 의식이 뇌의 물질적 상태와 동일하다고 ⓐ본다. 이와 달리 기능주의는 의식은 기능이며, 서로 다른 물질에서 같은 기능이 구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때 기능이란 어떤 입력이 주어졌을 때 특정한 출력을 내놓는 함수적 역할로 정의되며, 함수적 역할의 일치는 입력과 출력의 쌍이 일치함을 의미한다. 실리콘 칩으로 구성된 로봇이 찔림이라는 입력에 대해 고통을 출력으로 내놓는 기능을 가진다면, 로봇과 우리는 같은 의식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처럼 기능주의는 의식을 구현하는 물질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설(Searle)은 기능주의를 반박하는 사고 실험을 제시한다. ‘중국어 방’ 안에 중국어를 모르는 한 사람만 있다고 하자. 그는 중국어로 된 입력이 들어오면 정해진 규칙에 따라 중국어로 된 출력을 내놓는다. 설에 의하면 방 안의 사람은 중국어 사용자와 함수적 역할이 같지만 중국어를 아는 것은 아니다. 기능이 같으면서 의식은 다른 사례가 있다는 것이다.
동일론, 기능주의, 설은 모두 의식에 대한 논의를 의식을 구현하는 몸의 내부로만 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의식의 하나인 ‘인지’ 즉 ‘무언가를 알게 됨’은 몸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과 맞물려 벌어진다. 기억나지 않는 정보를 노트북에 저장된 파일을 열람하여 확인하는 것이 한 예이다. 로랜즈의 확장 인지 이론은 이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그에 ⓒ따르면 인지 과정은 주체에게 ‘심적 상태’가 생겨나게 하는 과정이다. 기억이나 믿음이 심적 상태의 예이다. 심적 상태는 어떤 것에도 의존함이 없이 주체에게 의미를 나타낸다. 예를 들어, 무언가를 기억하는 사람은 자기의 기억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아무것에도 의존할 필요가 없다. 이와 달리 ‘파생적 상태’는 주체의 해석에 의존해서만 또는 사회적 합의에 의존해서만 의미를 나타내는 상태로 정의된다. 앞의 예에서 노트북에 저장된 정보는 전자적 신호가 나열된 상태로서 파생적 상태이다. 주체에 의해 열람된 후에도 노트북의 정보는 여전히 파생적 상태이다. 하지만 열람 후 주체에게는 기억이 생겨난다. 로랜즈에게 인지 과정은 파생적 상태가 심적 상태로 변환되는 과정이 아니라, 파생적 상태를 조작함으로써 심적 상태를 생겨나게 하는 과정이다. 심적 상태가 주체의 몸 외부로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 심적 상태를 생겨나게 하는 인지 과정이 확장되는 것이다. 이러한 ㉠확장된 인지 과정은 인지 주체의 것일 때에만, 다시 말해 환경의 변화를 탐지하고 그에 맞춰 행위를 조절하는 주체와 통합되어 있을 때에만 성립할 수 있다. 즉 로랜즈에게 주체 없는 인지란 있을 수 없다. 확장 인지 이론은 의식의 문제를 몸 안으로 한정하지 않고 바깥으로까지 넓혀 설명한다는 의의를 지닌다.
(나)
일반적으로 ‘지각’이란 몸의 감각 기관을 통해 사물에 대해 아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지각을 분석할 때 두 가지 사실에 직면한다. 첫째, 그 사물과 내 몸은 물질세계에 있다. 둘째, 그 사물에 대한 나의 의식은 물질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 있다. 즉 몸으로서의 나는 사물과 같은 세계에 속하는 동시에 의식으로서의 나는 사물과 다른 세계에 속한다.
이에 대한 객관주의 철학의 입장은 두 가지로 나뉜다. 의식을 포함한 모든 것을 물질로 환원하여 의식은 물질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거나, 의식을 물질과 구분되는 독자적 실체로 규정함으로써 의식과 물질의 본질적 차이를 주장한다. 전자에 의하면 지각은 사물로부터의 감각 자극에 따른 주체의 물질적 반응으로 이해되며, 후자에 의하면 지각은 감각된 사물에 대한 주체 즉 의식의 판단으로 이해된다. 이처럼 양자 모두 주체와 대상의 분리를 전제하고 지각을 이해한다. 주체와 대상은 지각 이전에 이미 확정되어 각각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각은 주체와 대상이 각자로서 존재하기 이전에 나타나는 얽힘의 체험이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과 손이 맞닿을 때 내가 누군가의 손을 ⓔ만지는 동시에 나의 손 역시 누군가에 의해 만져진다. 감각하는 것이 동시에 감각되는 것이 되는 얽힘의 순간에, 나는 나와 대상을 확연히 구분한다. 지각이라는 얽힘의 작용이 있어야 주체와 대상이 분리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주체와 대상은 지각이 일어난 이후 비로소 확정된다. 따라서 ㉡지각과 감각은 서로 구분되지 않는다.
지각은 물질적 반응이나 의식의 판단이 아니라, 내 몸의 체험이다. 지각은 나의 몸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고, 지각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은 모두 나의 몸이다.
— , 의식과 인지 과정에 대한 철학적 논의
다음은 윗글을 읽은 학생이 정리한 내용이다. ㉮와 ㉯에 들어갈 말로 가장 적절한 것은?
의식과 함수적 역할, 내 몸의 체험
의식과 함수적 역할, 물질적 반응
의식과 뇌의 상태, 의식의 판단
의식과 뇌의 상태, 내 몸의 체험
입력과 출력, 의식의 판단
(가)에서 알 수 있는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동일론자들은 뇌가 존재하지 않으면 의식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것이다.
설(Searle)은 ‘중국어 방’ 안의 사람과 중국어를 아는 사람의 의식이 다르다고 볼 것이다.
로랜즈는 기억이 주체의 몸 바깥으로 확장될 수 있다고 볼 것이다.
로랜즈는 인지 과정이 파생적 상태를 조작하는 과정을 포함한다고 볼 것이다.
로랜즈는 노트북에 저장된 정보가 그 자체로는 심적 상태가 아니라고 볼 것이다.
(나)의 필자의 관점에서 ㉠을 평가한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확장된 인지 과정이 인지 주체의 것일 때에만 성립할 수 있다는 주장은, 지각 이전에 확정된 주체를 전제한 것이므로 타당하지 않다.
확장된 인지 과정이 인지 주체의 것일 때에만 성립할 수 있다는 주장은, 의식이 세계를 구성하는 독자적 실체라고 규정하는 것이므로 타당하다.
주체와 통합된 경우에만 확장된 인지 과정이 성립할 수 있다는 주장은, 의식은 물질에 불과하다고 본 것이므로 타당하다.
주체와 통합된 경우에만 확장된 인지 과정이 성립할 수 있다는 주장은, 외부 세계에 대한 지각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보는 것이므로 타당하지 않다.
주체와 통합된 경우에만 확장된 인지 과정이 성립할 수 있다는 주장은, 주체와 대상의 분리를 통해서만 지각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므로 타당하다.
㉡의 이유로 가장 적절한 것은?
감각과 지각 모두 물질세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감각하는 것이 동시에 감각되는 것이 되는 얽힘의 작용이 지각이기 때문에
지각은 몸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감각은 몸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지각은 의식으로서의 주체가 외부의 대상을 감각하여 판단한 결과이기 때문에
주체와 대상이 분리되기 이전에 감각과 지각이 분리된 채로 존재하기 때문에
(가), (나)를 바탕으로 <보기>의 상황을 이해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가)의 기능주의에 따르면, A와 B가 암실 내 동일한 사물의 위치를 묻는 질문에 동일한 대답을 내놓는 경우 이때 둘의 의식은 차이가 없겠군.
(가)의 확장 인지 이론에 따르면, BCI로 암실 내 사물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 B의 인지 과정인 경우 B에게 사물의 위치에 대한 심적 상태가 생겨나겠군.
(가)의 확장 인지 이론에 따르면, 암실 내 사물에 부딪친 막대기의 진동이 A의 해석에 의존해서만 의미를 나타내는 경우 그 진동 상태는 파생적 상태가 아니겠군.
(나)에서 몸에 의한 지각을 주장하는 입장에 따르면, 막대기에 의해 A가 사물의 위치를 지각하는 경우 막대기는 A의 몸의 일부라고 할 수 있겠군.
(나)에서 의식을 물질로 환원하는 입장에 따르면, BCI를 통해 입력된 정보로부터 B의 지각이 일어난 경우 BCI를 통해 들어온 자극에 따른 B의 물질적 반응이 일어난 것이겠군.
문맥상 ⓐ~ⓔ의 단어와 가장 가까운 의미로 쓰인 것은?
ⓐ: 그간의 사정을 봐서 그를 용서해 주었다.
ⓑ: 이사 후에 가난하던 살림살이가 일어났다.
ⓒ: 개발에 따른 자연 훼손 문제가 심각해졌다.
ⓓ: 단어의 뜻을 알아보기 위해 사전을 펼쳤다.
ⓔ: 그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제법 만질 줄 안다.
본 자료의 무단 복제·배포·전송을 금지하며, 위반 시 민·형사상 책임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가)에서 동일론은 의식이 뇌의 물질적 상태와 동일하다고 본다.
(가)의 동일론은 의식을 구현하는 물질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가)에서 기능주의는 서로 다른 물질에서 같은 기능이 구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가)에서 기능주의에 따르면 함수적 역할의 일치는 입력과 출력의 쌍이 일치함을 의미한다.
(가)의 설은 '중국어 방' 사고 실험을 제시하여 기능주의를 반박한다.
(가)에서 설에 따르면 '중국어 방' 안의 사람은 중국어 사용자와 함수적 역할이 다르다.
(가)의 설은 기능이 같으면서 의식은 다른 사례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가)에서 동일론, 기능주의, 설은 모두 의식에 대한 논의를 몸의 내부로만 한정하고 있다.
(가)에 따르면 의식의 하나인 인지는 몸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과 독립적으로 벌어진다.
(가)에서 로랜즈의 확장 인지 이론에 따르면 인지 과정은 주체에게 '심적 상태'가 생겨나게 하는 과정이다.
(가)의 로랜즈는 믿음을 심적 상태의 한 예로 제시한다.
(가)에서 로랜즈에 따르면 심적 상태는 어떤 것에 의존해야만 주체에게 의미를 나타낸다.
(가)에서 로랜즈에 따르면 '파생적 상태'는 주체의 해석이나 사회적 합의에 의존해서만 의미를 나타내는 상태이다.
(가)의 로랜즈는 노트북에 저장된 정보를 파생적 상태로 본다.
(가)에서 로랜즈에 따르면 노트북의 정보는 주체에 의해 열람된 후 심적 상태로 변환된다.
(가)에서 로랜즈의 인지 과정은 파생적 상태를 조작함으로써 심적 상태를 생겨나게 하는 과정이다.
(가)에서 로랜즈의 이론은 심적 상태가 주체의 몸 외부로 확장된다고 설명한다.
(가)에서 로랜즈는 주체 없는 인지도 성립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가)에서 확장 인지 이론은 의식의 문제를 몸 바깥으로까지 넓혀 설명한다는 의의를 지닌다.
(나)에 따르면 지각을 분석할 때 사물과 몸은 물질세계에 있다는 사실에 직면하게 된다.
(나)에 따르면 사물과 사물에 대한 나의 의식은 같은 세계에 속한다.
(나)에서 객관주의 철학은 의식을 포함한 모든 것을 물질로 환원하는 입장을 지니기도 한다.
(나)에서 의식을 물질로 환원하는 객관주의 철학의 입장은 지각을 의식의 판단으로 이해한다.
(나)에서 의식을 물질과 구분되는 독자적 실체로 규정하는 입장은 지각을 감각된 사물에 대한 의식의 판단으로 이해한다.
(나)에서 객관주의 철학의 두 입장은 모두 주체와 대상의 분리를 전제하고 지각을 이해한다.
(나)에서 객관주의 철학에 따르면 주체와 대상은 지각이 일어난 이후에 비로소 확정된다.
(나)에 따르면 지각은 주체와 대상이 각자로서 존재하기 이전에 나타나는 얽힘의 체험이다.
(나)에 따르면 지각이라는 얽힘의 작용이 있어야 주체와 대상이 분리될 수 있다.
(나)에 따르면 지각과 감각은 서로 확연히 구분된다.
(나)에 따르면 지각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은 모두 나의 몸이다.
본 자료의 무단 복제·배포·전송을 금지하며, 위반 시 민·형사상 책임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가)에서 의식이 뇌의 물질적 상태와 동일하다고 보는 심리 철학의 입장은 무엇인가?
(가)에서 기능주의가 '어떤 입력이 주어졌을 때 특정한 출력을 내놓는 함수적 역할'로 정의하는 것은 무엇인가?
(가)에서 설(Searle)이 기능주의를 반박하기 위해 제시한 사고 실험의 이름은 무엇인가?
(가)의 로랜즈의 이론에서 주체에게 의미를 나타낼 때 어떤 것에도 의존함이 없는 상태를 무엇이라 부르는가?
(가)의 로랜즈의 이론에서 주체의 해석에 의존해서만 또는 사회적 합의에 의존해서만 의미를 나타내는 상태를 무엇이라 부르는가?
(가)의 4문단에 따르면 심적 상태를 생겨나게 하는 인지 과정이 주체의 외부로 넓혀진다고 설명하는 이론은 무엇인가?
(나)에서 몸의 감각 기관을 통해 사물에 대해 아는 것을 의미하는 용어는 무엇인가?
(나)에서 의식을 물질로 환원하거나 물질과 구분되는 독자적 실체로 규정하는 철학적 입장을 무엇이라 부르는가?
(나)에서 지각은 주체와 대상이 각자로서 존재하기 이전에 나타나는 무슨 체험이라고 설명되는가?
(나)에 따르면 물질적 반응이나 의식의 판단이 아닌 '나의 몸'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은 무엇인가?
본 자료의 무단 복제·배포·전송을 금지하며, 위반 시 민·형사상 책임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1~5]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가)
심리 철학에서 동일론은 의식이 뇌의 물질적 상태와 동일하다고 본다. 이와 달리 기능주의는 의식은 기능이며, 서로 다른 물질에서 같은 기능이 구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때 기능이란 어떤 입력이 주어졌을 때 특정한 출력을 내놓는 함수적 역할로 정의되며, 함수적 역할의 일치는 입력과 출력의 쌍이 일치함을 의미한다. 실리콘 칩으로 구성된 로봇이 찔림이라는 입력에 대해 고통을 출력으로 내놓는 기능을 가진다면, 로봇과 우리는 같은 의식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처럼 기능주의는 의식을 구현하는 물질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설(Searle)은 기능주의를 반박하는 사고 실험을 제시한다. ‘중국어 방’ 안에 중국어를 모르는 한 사람만 있다고 하자. 그는 중국어로 된 입력이 들어오면 정해진 규칙에 따라 중국어로 된 출력을 내놓는다. 설에 의하면 방 안의 사람은 중국어 사용자와 함수적 역할이 같지만 중국어를 아는 것은 아니다. 기능이 같으면서 의식은 다른 사례가 있다는 것이다.
동일론, 기능주의, 설은 모두 의식에 대한 논의를 의식을 구현하는 몸의 내부로만 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의식의 하나인 ‘인지’ 즉 ‘무언가를 알게 됨’은 몸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과 맞물려 벌어진다. 기억나지 않는 정보를 노트북에 저장된 파일을 열람하여 확인하는 것이 한 예이다. 로랜즈의 확장 인지 이론은 이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그에 따르면 인지 과정은 주체에게 ‘㉠심적 상태’가 생겨나게 하는 과정이다. 기억이나 믿음이 심적 상태의 예이다. 심적 상태는 어떤 것에도 의존함이 없이 주체에게 의미를 나타낸다. 예를 들어, 무언가를 기억하는 사람은 자기의 기억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아무것에도 의존할 필요가 없다. 이와 달리 ‘㉡파생적 상태’는 주체의 해석에 의존해서만 또는 사회적 합의에 의존해서만 의미를 나타내는 상태로 정의된다. 앞의 예에서 노트북에 저장된 정보는 전자적 신호가 나열된 상태로서 파생적 상태이다. 주체에 의해 열람된 후에도 노트북의 정보는 여전히 파생적 상태이다. 하지만 열람 후 주체에게는 기억이 생겨난다. 로랜즈에게 인지 과정은 파생적 상태가 심적 상태로 변환되는 과정이 아니라, 파생적 상태를 조작함으로써 심적 상태를 생겨나게 하는 과정이다. 심적 상태가 주체의 몸 외부로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 심적 상태를 생겨나게 하는 인지 과정이 확장되는 것이다. 이러한 확장된 인지 과정은 인지 주체의 것일 때에만, 다시 말해 환경의 변화를 탐지하고 그에 맞춰 행위를 조절하는 주체와 통합되어 있을 때에만 성립할 수 있다. 즉 로랜즈에게 주체 없는 인지란 있을 수 없다. 확장 인지 이론은 의식의 문제를 몸 안으로 한정하지 않고 바깥으로까지 넓혀 설명한다는 의의를 지닌다.
(나)
일반적으로 ‘지각’이란 몸의 감각 기관을 통해 사물에 대해 아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지각을 분석할 때 두 가지 사실에 직면한다. 첫째, 그 사물과 내 몸은 물질세계에 있다. 둘째, 그 사물에 대한 나의 의식은 물질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 있다. 즉 몸으로서의 나는 사물과 같은 세계에 속하는 동시에 의식으로서의 나는 사물과 다른 세계에 속한다.
이에 대한 객관주의 철학의 입장은 두 가지로 나뉜다. 의식을 포함한 모든 것을 물질로 환원하여 의식은 물질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거나, 의식을 물질과 구분되는 독자적 실체로 규정함으로써 의식과 물질의 본질적 차이를 주장한다. 전자에 의하면 지각은 사물로부터의 감각 자극에 따른 주체의 물질적 반응으로 이해되며, 후자에 의하면 지각은 감각된 사물에 대한 주체 즉 의식의 판단으로 이해된다. 이처럼 양자 모두 주체와 대상의 분리를 전제하고 지각을 이해한다. 주체와 대상은 지각 이전에 이미 확정되어 각각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각은 주체와 대상이 각자로서 존재하기 이전에 나타나는 얽힘의 체험이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과 손이 맞닿을 때 내가 누군가의 손을 만지는 동시에 나의 손 역시 누군가에 의해 만져진다. 감각하는 것이 동시에 감각되는 것이 되는 얽힘의 순간에, 나는 나와 대상을 확연히 구분한다. 지각이라는 얽힘의 작용이 있어야 주체와 대상이 분리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주체와 대상은 지각이 일어난 이후 비로소 확정된다. 따라서 지각과 감각은 서로 구분되지 않는다.
지각은 물질적 반응이나 의식의 판단이 아니라, 내 몸의 체험이다. 지각은 나의 몸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고, 지각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은 모두 나의 몸이다.
윗글의 내용 전개 방식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가 지문은 의식의 범주를 여러 기준으로 분류한 후 각 범주에 해당하는 구체적 사례를 나열하고 있고, 나 지문은 지각이 이루어지는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단계별로 분석하여 설명하고 있다.
가 지문은 의식과 관련된 다양한 이론들을 역사적 발생 순서에 따라 통시적으로 나열하고 있고, 나 지문은 지각과 관련된 특정 철학자의 생애를 중심으로 학문의 발전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가 지문은 심리 철학의 대립하는 두 주장을 절충하여 실현 가능한 제3의 대안을 모색하고 있고, 나 지문은 객관주의 철학 내부의 모순을 지적하여 두 입장이 궁극적으로 동일함을 증명하고 있다.
가 지문은 의식에 관한 특정 이론들이 지닌 한계를 지적하며 새로운 이론을 소개하고 있고, 나 지문은 지각에 대한 기존의 철학적 입장을 비판하며 지각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가 지문은 의식을 규명하는 실험적 방법론의 타당성을 객관적인 데이터를 통해 검증하고 있고, 나 지문은 지각에 대한 상반된 철학적 입장을 비교하여 각각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해결책을 제안하고 있다.
윗글을 바탕으로 ㉠과 ㉡에 대해 이해한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은 ㉡과 달리, 외부 환경의 자극 없이도 주체의 몸 바깥으로 스스로 확장되어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독립적인 성질을 지닌다.
㉡은 ㉠과 달리, 인지 과정에 의해 조작의 대상이 됨으로써 주체에게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않는 무의미한 상태로 변환된다.
㉠은 어떤 것에도 의존함이 없이 주체에게 의미를 나타내는 반면, ㉡은 주체의 해석이나 사회적 합의에 의존해서만 의미를 나타낸다.
㉠과 ㉡은 모두, 로랜즈의 관점에서 인지 주체의 개입 여부와 무관하게 환경의 변화를 독립적으로 탐지하여 행위를 조절할 수 있다.
㉡은 ㉠과 달리, 주체에 의해 한 번 열람되고 나면 그 즉시 본래의 성질을 상실하고 주체의 몸 내부에 귀속된 기억으로 탈바꿈한다.
윗글을 바탕으로 다음의 ㄱ~ㄹ에 대해 판단한 것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의식을 기능으로 정의하는 기능주의는 명제 ㄱ과 ㄷ에 대해 모두 긍정하는 입장을 보이겠군.
의식을 기능으로 정의하는 기능주의는 명제 ㄱ에 동의하지 않고, 명제 ㄴ에 동의하는 입장을 보이겠군.
기능주의를 반박하는 사고 실험을 제시한 설은 명제 ㄱ과 ㄷ에 대해 모두 긍정하는 입장을 보이겠군.
기능주의를 반박하는 사고 실험을 제시한 설은 명제 ㄴ에 동의하지 않고, 명제 ㄹ에 동의하는 입장을 보이겠군.
기능주의를 반박하는 사고 실험을 제시한 설은 명제 ㄱ에 동의하지 않고, 명제 ㄷ에 동의하는 입장을 보이겠군.
윗글을 바탕으로 추론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객관주의 철학에서 지각을 의식의 판단으로 규정하는 입장은, 의식이 사물과 다른 세계에 속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성립한 것이겠군.
감각하는 것과 감각되는 것이 동시에 일어나는 얽힘의 작용이 없다면, 나와 대상이 확연히 구분되는 주체와 대상의 확정도 일어나지 않겠군.
필자는 지각을 물질적 반응이나 의식의 판단으로 나누는 이해를 거부하고, 지각이 이루어지게 하는 주도권이 오직 나의 몸에 있다고 판단하겠군.
객관주의 철학에서 의식을 물질로 환원하는 입장은, 지각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사물로부터의 감각 자극이 주체의 물질적 반응보다 선행한다고 전제하겠군.
필자는 다른 사람과 손이 맞닿는 상황에서, 손을 만지는 내 몸의 체험 이전에 주체로서의 나와 대상으로서의 타인이 이미 확정되어 각각 존재한다고 보겠군.
윗글을 바탕으로 <보기>를 이해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객관주의 중 전자의 입장에 따르면, A가 운전대와 접촉하여 상호작용하는 것은 사물로부터의 감각 자극에 따른 주체의 물질적 반응으로 이해되겠군.
객관주의 중 후자의 입장에 따르면, A가 화면을 보고 경로 파악하는 것은 감각된 사물인 화면에 대해 주체 즉 의식이 판단을 내린 것으로 이해되겠군.
필자에 따르면, A의 시선이 화면을 향하고 손이 운전대와 접촉하는 얽힘의 체험이 일어난 이후에야 비로소 주체인 A와 대상인 운전대가 분리되어 확정되겠군.
로랜즈에 따르면, A가 화면의 경로 정보를 확인하여 길을 파악하는 것은 전자 지도의 파생적 상태가 A의 심적 상태로 변환되어 A에게 목적지까지의 경로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과정이겠군.
로랜즈에 따르면, A가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행위를 조절하는 과정에서 화면에 표시된 경로 정보는 A에 의해 열람된 후에도 여전히 주체의 해석에 의존해야만 의미를 나타내는 상태로 남아 있겠군.
본 자료의 무단 복제·배포·전송을 금지하며, 위반 시 민·형사상 책임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6~10]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가)
심리 철학에서 동일론은 의식이 뇌의 물질적 상태와 동일하다고 본다. 이와 달리 기능주의는 의식은 기능이며, 서로 다른 물질에서 같은 기능이 구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때 기능이란 어떤 입력이 주어졌을 때 특정한 출력을 내놓는 함수적 역할로 정의되며, 함수적 역할의 일치는 입력과 출력의 쌍이 일치함을 의미한다. 실리콘 칩으로 구성된 로봇이 찔림이라는 입력에 대해 고통을 출력으로 내놓는 기능을 가진다면, 로봇과 우리는 같은 의식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처럼 기능주의는 의식을 구현하는 물질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설(Searle)은 기능주의를 반박하는 사고 실험을 제시한다. ‘중국어 방’ 안에 중국어를 모르는 한 사람만 있다고 하자. 그는 중국어로 된 입력이 들어오면 정해진 규칙에 따라 중국어로 된 출력을 내놓는다. 설에 의하면 방 안의 사람은 중국어 사용자와 함수적 역할이 같지만 중국어를 아는 것은 아니다. 기능이 같으면서 의식은 다른 사례가 있다는 것이다.
동일론, 기능주의, 설은 모두 의식에 대한 논의를 의식을 구현하는 몸의 내부로만 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의식의 하나인 ‘인지’ 즉 ‘무언가를 알게 됨’은 몸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과 맞물려 벌어진다. 기억나지 않는 정보를 노트북에 저장된 파일을 열람하여 확인하는 것이 한 예이다. 로랜즈의 확장 인지 이론은 이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그에 따르면 인지 과정은 주체에게 ‘심적 상태’가 생겨나게 하는 과정이다. 기억이나 믿음이 심적 상태의 예이다. 심적 상태는 어떤 것에도 의존함이 없이 주체에게 의미를 나타낸다. 예를 들어, 무언가를 기억하는 사람은 자기의 기억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아무것에도 의존할 필요가 없다. 이와 달리 ‘파생적 상태’는 주체의 해석에 의존해서만 또는 사회적 합의에 의존해서만 의미를 나타내는 상태로 정의된다. 앞의 예에서 노트북에 저장된 정보는 전자적 신호가 나열된 상태로서 파생적 상태이다. ㉮주체에 의해 열람된 후에도 노트북의 정보는 여전히 파생적 상태이다. 하지만 열람 후 주체에게는 기억이 생겨난다. 로랜즈에게 인지 과정은 파생적 상태가 심적 상태로 변환되는 과정이 아니라, 파생적 상태를 조작함으로써 심적 상태를 생겨나게 하는 과정이다. 심적 상태가 주체의 몸 외부로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 심적 상태를 생겨나게 하는 인지 과정이 확장되는 것이다. 이러한 확장된 인지 과정은 인지 주체의 것일 때에만, 다시 말해 환경의 변화를 탐지하고 그에 맞춰 행위를 조절하는 주체와 통합되어 있을 때에만 성립할 수 있다. 즉 로랜즈에게 주체 없는 인지란 있을 수 없다. 확장 인지 이론은 의식의 문제를 몸 안으로 한정하지 않고 바깥으로까지 넓혀 설명한다는 의의를 지닌다.
(나)
일반적으로 ‘지각’이란 몸의 감각 기관을 통해 사물에 대해 아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지각을 분석할 때 두 가지 사실에 직면한다. 첫째, 그 사물과 내 몸은 물질세계에 있다. 둘째, 그 사물에 대한 나의 의식은 물질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 있다. 즉 몸으로서의 나는 사물과 같은 세계에 속하는 동시에 의식으로서의 나는 사물과 다른 세계에 속한다.
이에 대한 객관주의 철학의 입장은 두 가지로 나뉜다. 의식을 포함한 모든 것을 물질로 환원하여 의식은 물질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거나, 의식을 물질과 구분되는 독자적 실체로 규정함으로써 의식과 물질의 본질적 차이를 주장한다. 전자에 의하면 지각은 사물로부터의 감각 자극에 따른 주체의 물질적 반응으로 이해되며, 후자에 의하면 지각은 감각된 사물에 대한 주체 즉 의식의 판단으로 이해된다. 이처럼 양자 모두 주체와 대상의 분리를 전제하고 지각을 이해한다. 주체와 대상은 지각 이전에 이미 확정되어 각각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각은 주체와 대상이 각자로서 존재하기 이전에 나타나는 얽힘의 체험이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과 손이 맞닿을 때 내가 누군가의 손을 만지는 동시에 나의 손 역시 누군가에 의해 만져진다. 감각하는 것이 동시에 감각되는 것이 되는 얽힘의 순간에, 나는 나와 대상을 확연히 구분한다. 지각이라는 얽힘의 작용이 있어야 주체와 대상이 분리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주체와 대상은 지각이 일어난 이후 비로소 확정된다. 따라서 지각과 감각은 서로 구분되지 않는다.
지각은 물질적 반응이나 의식의 판단이 아니라, 내 몸의 체험이다. 지각은 나의 몸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고, 지각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은 모두 나의 몸이다.
윗글을 이해한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기능주의는 동일한 함수적 역할을 수행하는 서로 다른 물질들은 각기 구분되는 서로 다른 형태의 독립된 의식을 지니게 된다고 주장한다.
설은 중국어 방 안의 사람이 정해진 규칙에 따라 출력을 내놓는 기능을 수행하더라도, 중국어 사용자와는 전혀 다른 함수적 역할을 가진다고 본다.
필자는 지각이라는 얽힘의 작용 이전에 감각하는 나와 감각되는 대상이 이미 각각의 세계에 완전하게 분리되어 확정된다는 객관주의의 전제를 옹호한다.
로랜즈는 파생적 상태를 조작하여 심적 상태를 생겨나게 하는 인지 과정이 외부로 확장된다고 보면서도, 이는 주체와 통합되어야만 성립한다고 주장한다.
동일론과 기능주의는 의식을 규명하는 기준에 있어서는 서로 대립하지만, 의식의 문제를 인지 주체의 몸 바깥 영역으로까지 확장하여 설명한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윗글을 참고할 때, ㉮의 이유로 가장 적절한 것은?
주체가 노트북의 정보를 열람하는 과정에서 전자적 신호가 주체의 기억과 완전히 동일한 실체의 심적 상태로 변환되기 때문이다.
노트북의 정보는 사회적 합의와 무관하게 그 자체만으로 주체에게 독립적인 의미를 나타내는 심적 상태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트북의 정보가 주체의 몸 외부로 확장되어 주체에게 새로운 심적 상태를 직접적으로 이식하는 독립적 성질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노트북의 정보는 열람 후에도 주체의 해석에 의존해야만 비로소 의미를 나타내는 파생적 상태의 본질을 그대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인지 주체가 환경의 변화를 탐지하지 못하더라도 노트북의 정보 스스로 심적 상태를 생겨나게 하는 내부 조작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윗글의 [A]에 대한 이해로 가장 적절하지 않은 것은?
객관주의 철학 중 의식을 물질로 환원하는 입장은, 신체 외부의 사물로부터 전달되는 감각 자극이 선행되어야만 지각이라는 물질적 반응이 나타난다고 판단하겠군.
객관주의 철학 중 의식을 독자적 실체로 규정하는 입장은, 지각을 수행하는 의식이 물질세계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세계에 속한다고 전제하겠군.
객관주의 철학의 양 입장은 서로 다른 본질을 주장하지만, 주체와 대상이 얽히는 지각 작용을 거친 이후에야 비로소 두 개체가 명확히 분리된다고 동일하게 간주하겠군.
객관주의 철학의 양 입장은 의식과 물질의 관계를 규명하는 구체적인 방식은 다르더라도, 지각 이전에 감각하는 주체와 대상이 이미 확정되어 있다는 전제를 공유하겠군.
객관주의 철학이 지각을 분석하기 위해 도입한 두 입장은 모두 내 몸과 사물이 하나의 물질세계에 속하면서도 의식은 그렇지 않다는 분열적 딜레마를 해결하려는 시도이겠군.
윗글을 읽은 학생의 반응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기능주의에 따르면, 어떤 기계가 인간과 완전히 동일한 입력과 출력의 쌍을 보여준다면 그 기계의 물질적 구성과 무관하게 인간과 동일한 의식을 가졌다고 보아야 하겠군.
객관주의 중 의식을 물질로 환원하는 입장에 따르면, 내가 뜨거운 난로에 손을 대고 반사적으로 움츠리는 지각 현상은 뜨거움이라는 감각 자극에 대해 내 몸이 나타낸 물질적 반응으로 설명할 수 있겠군.
필자에 따르면, 내가 다른 사람과 악수를 할 때 상대방 손의 온기를 느끼는 동시에 내 손의 온기도 전해지는 얽힘을 겪은 이후에야 비로소 악수를 하는 나와 상대방이 분리된 대상과 주체로 확정되겠군.
필자에 따르면, 지각은 주체와 대상이 각자로서 존재하기 이전에 나타나는 얽힘의 체험이므로 인간이 사물을 온전히 지각하기 위해서는 몸의 감각 기관이 개입하기 이전에 의식의 판단이 먼저 이루어져야 하겠군.
확장 인지 이론에 따르면, 내가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 읽으며 지식을 얻는 현상은 책이라는 파생적 상태가 내 몸 안으로 들어와 심적 상태로 변환되는 것이 아니라 파생적 상태를 조작해 앎을 생겨나게 하는 과정이겠군.
윗글을 바탕으로 <보기>의 C의 주장을 이해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C는 필자와 마찬가지로, 내 몸과 세계가 맞닿는 얽힘의 순간 이전에는 주체와 대상이 각자로서 확정되어 온전히 존재할 수 없다고 판단하겠군.
C는 필자와 마찬가지로, 주체가 감각된 사물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과정을 거친 이후에야 비로소 감각하는 것과 감각되는 것의 얽힘이 나타난다고 주장하겠군.
C는 로랜즈가 파생적 상태를 조작하는 주체를 전제한 것에 대해, 환경과 상호작용하기 이전에 이미 확고하게 존재하는 나를 출발점으로 삼은 오류라고 비판하겠군.
C는 로랜즈가 인지 과정의 확장을 주장하면서도 주체 없는 인지란 있을 수 없다고 본 것에 대해, 결국 주체와 대상의 분리를 전제하고 인지를 이해한 것이라고 지적하겠군.
C는 로랜즈가 주장한 환경의 변화를 탐지하는 주체에 대해, 최초의 마찰음 속에서 탄생하는 진정한 주체의 성질을 간과한 채 지각 이전에 주체를 확정한 것이라고 평가하겠군.
본 자료의 무단 복제·배포·전송을 금지하며, 위반 시 민·형사상 책임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11~15]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가)
심리 철학에서 동일론은 의식이 뇌의 물질적 상태와 동일하다고 본다. 이와 달리 기능주의는 의식은 기능이며, 서로 다른 물질에서 같은 기능이 구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때 기능이란 어떤 입력이 주어졌을 때 특정한 출력을 내놓는 함수적 역할로 정의되며, 함수적 역할의 일치는 입력과 출력의 쌍이 일치함을 의미한다. 실리콘 칩으로 구성된 로봇이 찔림이라는 입력에 대해 고통을 출력으로 내놓는 기능을 가진다면, 로봇과 우리는 같은 의식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처럼 기능주의는 의식을 구현하는 물질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설(Searle)은 기능주의를 반박하는 사고 실험을 제시한다. ‘중국어 방’ 안에 중국어를 모르는 한 사람만 있다고 하자. 그는 중국어로 된 입력이 들어오면 정해진 규칙에 따라 중국어로 된 출력을 내놓는다. 설에 의하면 방 안의 사람은 중국어 사용자와 함수적 역할이 같지만 중국어를 아는 것은 아니다. 기능이 같으면서 의식은 다른 사례가 있다는 것이다.
동일론, 기능주의, 설은 모두 의식에 대한 논의를 의식을 구현하는 몸의 내부로만 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의식의 하나인 ‘인지’ 즉 ‘무언가를 알게 됨’은 몸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과 맞물려 벌어진다. 기억나지 않는 정보를 노트북에 저장된 파일을 열람하여 확인하는 것이 한 예이다. 로랜즈의 확장 인지 이론은 이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그에 따르면 인지 과정은 주체에게 ‘심적 상태’가 생겨나게 하는 과정이다. 기억이나 믿음이 심적 상태의 예이다. 심적 상태는 어떤 것에도 의존함이 없이 주체에게 의미를 나타낸다. 예를 들어, 무언가를 기억하는 사람은 자기의 기억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아무것에도 의존할 필요가 없다. 이와 달리 ‘파생적 상태’는 주체의 해석에 의존해서만 또는 사회적 합의에 의존해서만 의미를 나타내는 상태로 정의된다. 앞의 예에서 노트북에 저장된 정보는 전자적 신호가 나열된 상태로서 파생적 상태이다. 주체에 의해 열람된 후에도 노트북의 정보는 여전히 파생적 상태이다. 하지만 열람 후 주체에게는 기억이 생겨난다. 로랜즈에게 인지 과정은 파생적 상태가 심적 상태로 변환되는 과정이 아니라, 파생적 상태를 조작함으로써 심적 상태를 생겨나게 하는 과정이다. 심적 상태가 주체의 몸 외부로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 심적 상태를 생겨나게 하는 인지 과정이 확장되는 것이다. 이러한 확장된 인지 과정은 인지 주체의 것일 때에만, 다시 말해 환경의 변화를 탐지하고 그에 맞춰 행위를 조절하는 주체와 통합되어 있을 때에만 성립할 수 있다. 즉 로랜즈에게 주체 없는 인지란 있을 수 없다. 확장 인지 이론은 의식의 문제를 몸 안으로 한정하지 않고 바깥으로까지 넓혀 설명한다는 의의를 지닌다.
(나)
일반적으로 ‘㉠지각’이란 몸의 감각 기관을 통해 사물에 대해 아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지각을 분석할 때 두 가지 사실에 직면한다. 첫째, 그 사물과 내 몸은 물질세계에 있다. 둘째, 그 사물에 대한 나의 의식은 물질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 있다. 즉 몸으로서의 나는 사물과 같은 세계에 속하는 동시에 의식으로서의 나는 사물과 다른 세계에 속한다.
이에 대한 객관주의 철학의 입장은 두 가지로 나뉜다. 의식을 포함한 모든 것을 물질로 환원하여 의식은 물질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거나, 의식을 물질과 구분되는 독자적 실체로 규정함으로써 의식과 물질의 본질적 차이를 주장한다. 전자에 의하면 지각은 사물로부터의 감각 자극에 따른 주체의 물질적 반응으로 이해되며, 후자에 의하면 지각은 감각된 사물에 대한 주체 즉 의식의 판단으로 이해된다. 이처럼 양자 모두 주체와 대상의 분리를 전제하고 지각을 이해한다. 주체와 대상은 지각 이전에 이미 확정되어 각각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각은 주체와 대상이 각자로서 존재하기 이전에 나타나는 얽힘의 체험이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과 손이 맞닿을 때 내가 누군가의 손을 만지는 동시에 나의 손 역시 누군가에 의해 만져진다. 감각하는 것이 동시에 감각되는 것이 되는 얽힘의 순간에, 나는 나와 대상을 확연히 구분한다. 지각이라는 얽힘의 작용이 있어야 주체와 대상이 분리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주체와 대상은 지각이 일어난 이후 비로소 확정된다. 따라서 지각과 감각은 서로 구분되지 않는다.
지각은 물질적 반응이나 의식의 판단이 아니라, 내 몸의 체험이다. 지각은 나의 몸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고, 지각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은 모두 나의 몸이다.
윗글을 통해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은?
로랜즈의 이론에 따르면 주체 바깥으로 확장된 인지 과정이 성립하기 위해 인지 주체는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가.
기능주의에 따르면 서로 다른 물질로 이루어진 존재들이 동일한 의식을 가지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가.
객관주의 철학 중 후자의 입장은 지각 현상을 분석할 때 감각된 사물에 대해 주체가 어떤 작용을 수행한다고 판단하는가.
필자에 따르면 지각과 감각이 구분되지 않는 이유는 얽힘의 작용과 주체의 확정 사이에 어떤 선후 관계가 있기 때문인가.
동일론에 따르면 의식을 뇌의 물질적 상태로 국한할 때 뇌 이외의 다른 물질은 의식을 구현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윗글의 ㉠에 대한 이해로 가장 적절한 것은?
㉠은 필자에 따르면 감각하는 주체와 감각되는 대상이 물질세계에서 온전히 분리되고 확정된 이후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은 객관주의 중 전자의 입장에 따르면 감각된 외부의 사물에 대해 주체가 내리는 독자적인 의식의 판단 과정으로 정의된다.
㉠은 필자에 따르면 주체와 대상이 얽히는 체험을 거쳐 감각과 명확히 구분되는 독립적인 인지 단계로 발전하게 된다.
㉠은 필자에 따르면 사물로부터의 감각 자극에 따른 물질적 반응이나 판단이 아니라 나의 몸에 의해 이루어지는 체험이다.
㉠은 객관주의 철학의 양 입장에 따르면 사물에 대한 의식이 물질세계와 다른 세계에 속함을 부정함으로써 주체와 대상을 통합한다.
윗글을 바탕으로 다음의 ㄱ~ㄹ에 대해 판단한 것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객관주의 철학 중 전자의 입장은 ㄱ과 ㄷ에 동의하겠군.
객관주의 철학 중 전자의 입장은 ㄹ에 동의하지 않고, ㄴ에 동의하겠군.
객관주의 철학 중 후자의 입장은 ㄱ과 ㄴ에 동의하겠군.
객관주의 철학 중 후자의 입장은 ㄷ에 동의하지 않고, ㄹ에 동의하겠군.
객관주의 철학 중 후자의 입장은 ㄴ에 동의하지 않고, ㄷ에 동의하겠군.
윗글을 바탕으로 추론한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필자는 주체와 대상이 얽힘의 체험 이전에 분리된다고 보므로, 설이 비판한 중국어 방의 규칙 처리 과정도 지각 이전의 상태로 평가하겠군.
객관주의 철학은 주체와 대상의 분리를 지각 이전에 전제하므로, 환경의 변화를 탐지하는 주체가 필요하다고 본 로랜즈의 전제와 상충하겠군.
로랜즈는 인지 과정이 주체의 몸 외부로 확장된다고 보았으므로, 지각을 물질적 반응으로 이해한 객관주의 전자의 입장과 동일한 전제를 취하겠군.
로랜즈는 인지의 확장을 위해 주체와의 통합을 조건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지각 발생 이전에 주체가 확정되어 있다고 본 객관주의와 전제를 공유하겠군.
필자는 주체와 대상이 분리되기 이전에 지각이 나타난다고 보므로, 파생적 상태가 심적 상태로 변환되어야 인지가 발생한다는 로랜즈의 주장을 지지하겠군.
윗글을 바탕으로 <보기>를 이해한 내용으로 가장 적절하지 않은 것은?
기능주의에 따르면, 알파를 구성하는 물질이 인간의 뇌와 다르더라도 함수적 역할이 동일하다면 알파와 인간은 같은 의식을 가진다고 판단하겠군.
기능주의에 따르면, 알파가 사과 모양 블록을 입력받아 바구니에 넣는 출력을 완벽하게 수행했다면 인간과 동일한 함수적 역할을 수행한 것이겠군.
설에 따르면, 알파가 연산 알고리즘 규칙에 따라 정확하게 출력을 내놓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사과가 무엇인지 아는 의식을 지녔다고 볼 수 없겠군.
설에 따르면, 알파가 정해진 규칙에 따라 완벽한 출력을 내놓아 인간과 동일한 함수적 역할을 수행하므로 사과를 아는 의식을 가졌다고 평가하겠군.
동일론에 따르면, 알파가 모터를 제어하여 정확한 출력을 내놓더라도 그 물질적 구성이 뇌와 다르므로 동일한 의식을 구현한 것이 아니라고 보겠군.
본 자료의 무단 복제·배포·전송을 금지하며, 위반 시 민·형사상 책임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16~20]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가)
심리 철학에서 동일론은 의식이 뇌의 물질적 상태와 동일하다고 본다. 이와 달리 기능주의는 의식은 기능이며, 서로 다른 물질에서 같은 기능이 구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때 기능이란 어떤 입력이 주어졌을 때 특정한 출력을 내놓는 함수적 역할로 정의되며, 함수적 역할의 일치는 입력과 출력의 쌍이 일치함을 의미한다. 실리콘 칩으로 구성된 로봇이 찔림이라는 입력에 대해 고통을 출력으로 내놓는 기능을 가진다면, 로봇과 우리는 같은 의식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처럼 기능주의는 의식을 구현하는 물질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설(Searle)은 기능주의를 반박하는 사고 실험을 제시한다. ‘중국어 방’ 안에 중국어를 모르는 한 사람만 있다고 하자. 그는 중국어로 된 입력이 들어오면 정해진 규칙에 따라 중국어로 된 출력을 내놓는다. 설에 의하면 방 안의 사람은 중국어 사용자와 함수적 역할이 같지만 중국어를 아는 것은 아니다. 기능이 같으면서 의식은 다른 사례가 있다는 것이다.
동일론, 기능주의, 설은 모두 의식에 대한 논의를 의식을 구현하는 몸의 내부로만 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의식의 하나인 ‘인지’ 즉 ‘무언가를 알게 됨’은 몸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과 맞물려 벌어진다. 기억나지 않는 정보를 노트북에 저장된 파일을 열람하여 확인하는 것이 한 예이다. 로랜즈의 확장 인지 이론은 이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그에 따르면 인지 과정은 주체에게 ‘심적 상태’가 생겨나게 하는 과정이다. 기억이나 믿음이 심적 상태의 예이다. 심적 상태는 어떤 것에도 의존함이 없이 주체에게 의미를 나타낸다. 예를 들어, 무언가를 기억하는 사람은 자기의 기억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아무것에도 의존할 필요가 없다. 이와 달리 ‘파생적 상태’는 주체의 해석에 의존해서만 또는 사회적 합의에 의존해서만 의미를 나타내는 상태로 정의된다. 앞의 예에서 노트북에 저장된 정보는 전자적 신호가 나열된 상태로서 파생적 상태이다. 주체에 의해 열람된 후에도 노트북의 정보는 여전히 파생적 상태이다. 하지만 열람 후 주체에게는 기억이 생겨난다. 로랜즈에게 인지 과정은 파생적 상태가 심적 상태로 변환되는 과정이 아니라, 파생적 상태를 조작함으로써 심적 상태를 생겨나게 하는 과정이다. 심적 상태가 주체의 몸 외부로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 심적 상태를 생겨나게 하는 인지 과정이 확장되는 것이다. 이러한 확장된 인지 과정은 인지 주체의 것일 때에만, 다시 말해 환경의 변화를 탐지하고 그에 맞춰 행위를 조절하는 주체와 통합되어 있을 때에만 성립할 수 있다. 즉 로랜즈에게 ㉮주체 없는 인지란 있을 수 없다. 확장 인지 이론은 의식의 문제를 몸 안으로 한정하지 않고 바깥으로까지 넓혀 설명한다는 의의를 지닌다.
(나)
일반적으로 ‘지각’이란 몸의 감각 기관을 통해 사물에 대해 아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지각을 분석할 때 두 가지 사실에 직면한다. 첫째, 그 사물과 내 몸은 물질세계에 있다. 둘째, 그 사물에 대한 나의 의식은 물질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 있다. 즉 몸으로서의 나는 사물과 같은 세계에 속하는 동시에 의식으로서의 나는 사물과 다른 세계에 속한다.
이에 대한 객관주의 철학의 입장은 두 가지로 나뉜다. 의식을 포함한 모든 것을 물질로 환원하여 의식은 물질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거나, 의식을 물질과 구분되는 독자적 실체로 규정함으로써 의식과 물질의 본질적 차이를 주장한다. 전자에 의하면 지각은 사물로부터의 감각 자극에 따른 주체의 물질적 반응으로 이해되며, 후자에 의하면 지각은 감각된 사물에 대한 주체 즉 의식의 판단으로 이해된다. 이처럼 양자 모두 주체와 대상의 분리를 전제하고 지각을 이해한다. 주체와 대상은 지각 이전에 이미 확정되어 각각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각은 주체와 대상이 각자로서 존재하기 이전에 나타나는 얽힘의 체험이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과 손이 맞닿을 때 내가 누군가의 손을 만지는 동시에 나의 손 역시 누군가에 의해 만져진다. 감각하는 것이 동시에 감각되는 것이 되는 얽힘의 순간에, 나는 나와 대상을 확연히 구분한다. 지각이라는 얽힘의 작용이 있어야 주체와 대상이 분리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주체와 대상은 지각이 일어난 이후 비로소 확정된다. 따라서 지각과 감각은 서로 구분되지 않는다.
지각은 물질적 반응이나 의식의 판단이 아니라, 내 몸의 체험이다. 지각은 나의 몸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고, 지각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은 모두 나의 몸이다.
윗글을 이해한 내용으로 가장 적절하지 않은 것은?
기능주의는 특정한 입력과 출력의 쌍이 일치하는 함수적 역할이 동일하다면 서로 다른 물질로 이루어졌더라도 동일한 의식을 구현하게 된다고 본다.
객관주의 철학에서 의식을 독자적 실체로 규정하는 입장은 지각을 감각된 사물에 대한 주체 즉 의식의 독자적인 판단 과정으로 파악하여 이해한다.
필자는 내가 누군가의 손을 만지는 동시에 나의 손 역시 타인에 의해 만져지는 얽힘의 작용이 일어난 이후에 비로소 주체와 대상이 분리된다고 본다.
로랜즈는 확장 인지 이론이 성립하기 위해 주체의 심적 상태가 몸 외부의 환경으로 직접 확장되어 주변 환경과 완전히 하나로 통합되어야 있다고 본다.
설은 중국어 방의 사례를 들어 정해진 규칙에 따라 출력을 내놓아 기능이 일치하더라도 그 안에 중국어를 아는 의식은 완전히 부재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윗글을 참고할 때, ㉮의 이유로 가장 적절한 것은?
심적 상태가 외부로 확장되기 위해서는 파생적 상태가 심적 상태로 온전히 변환되는 절대적인 과정이 필수적으로 요구되기 때문이다.
주체와 대상이 지각 이전에 이미 확정되어 각각 독립적으로 분리된 상태에서 파생적 상태에 대한 주체의 조작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확장된 인지 과정은 환경의 변화를 탐지하고 그에 맞춰 자신의 행위를 조절하는 인지 주체와 통합되어 있을 때에만 성립하기 때문이다.
파생적 상태는 주체의 해석이나 사회적 합의가 없더라도 노트북의 정보처럼 독립적이고 온전한 의미를 스스로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확장 인지 이론에서 주체의 몸 내부로 국한되었던 의식이 외부 세계에서 일어나는 감각 자극에 대한 물리적 반응으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윗글을 읽은 학생의 반응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동일론의 관점에 따르면, 의식을 단순히 뇌의 물질적 상태로 국한하기 때문에 뇌가 아닌 다른 물질로 구성된 존재가 정해진 출력을 내놓더라도 의식을 가졌다고 인정하지 않겠군.
설의 관점에 따르면, 중국어 방의 사람이 완벽한 중국어 출력을 내놓더라도 그 의미를 해석하지 못하는 것처럼 특정 규칙의 수행만으로는 온전한 의식이 보장될 수 없다고 평가하겠군.
객관주의 중 의식을 독자적 실체로 규정하는 입장에서는, 내가 책상의 질감을 느끼는 지각 작용을 수행할 때 그 사물에 대한 나의 의식이 물질세계와 확연히 분리되어 있다고 이해하겠군.
로랜즈의 관점에서는, 인지 주체가 노트북에 저장된 정보를 열람하여 파생적 상태를 조작하더라도 그 정보는 주체와 독립된 외부 환경에 머물기 때문에 심적 상태를 생겨나게 할 수 없겠군.
필자 관점에서는, 지각이 사물로부터의 자극에 대한 기계적 반응이나 고차원적인 정신의 판단이 아니라 오직 살아 숨 쉬는 나의 몸을 통해 이루어지는 생생한 체험의 과정이라고 판단하겠군.
윗글을 바탕으로 추론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로랜즈는 인지 과정을 몸 바깥으로 확장하여 설명하면서도 환경의 변화를 탐지하는 주체와의 통합을 인지 과정 성립의 조건으로 삼겠군.
필자는 감각하는 것이 동시에 감각되는 얽힘의 작용이 지각이며 이 얽힘 이후에 주체와 대상이 분리되므로 지각과 감각을 구분하지 않겠군.
객관주의 철학은 의식을 물질로 환원하든 독자적 실체로 규정하든 지각 발생 이전에 주체와 대상의 분리를 전제한다는 공통의 한계를 지니겠군.
설은 방 안의 사람이 정해진 규칙에 따라 출력을 내놓는 실험을 통해 함수적 역할의 일치가 의식의 존재를 온전히 보장하지 않음을 주장하겠군.
객관주의 철학이 지각 현상을 분석할 때 마주하는 모순은, 지각하는 주체의 몸과 감각되는 대상인 사물이 서로 분리된 별개의 차원에 속한다는 전제에서 비롯되겠군.
윗글을 바탕으로 <보기>의 학자 A와 B의 주장을 이해한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학자 A는 객관주의 중 전자의 입장과 유사하게 지각이라는 얽힘의 작용이 일어난 이후에 주체와 대상이 온전히 분리된다고 보겠군.
학자 B는 객관주의 중 후자의 입장과 달리 비물질적인 정신의 판단을 거친 이후에 감각하는 주체와 감각되는 대상이 확정된다고 보겠군.
학자 A와 B는 모두 지각이라는 얽힘의 체험이 선행되어야만 비로소 주체와 대상이 물질세계에서 확연히 구분될 수 있다는 견해를 수용하겠군.
학자 A와 B는 의식을 물질로 볼 것인지에서 대립하지만, 두 학자 모두 지각 이전에 주체와 대상이 이미 확정되어 있다는 전제를 공유하겠군.
필자는 학자 A가 주장하는 신경 세포의 변화와 학자 B가 주장하는 정신의 판단이 서로 결합될 때 지각과 감각이 명확히 구분된다고 평가하겠군.
본 자료의 무단 복제·배포·전송을 금지하며, 위반 시 민·형사상 책임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지문 분석
이 글은 사람의 의식과 지각이 어떤 원리로 일어나는지를 철학적으로 깊이 있게 다루는 글입니다. (가)는 의식의 범위가 몸 안을 넘어 몸 밖으로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나)는 지각이 일어날 때 나와 대상 중 무엇이 먼저 존재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합니다. 각 철학적 입장의 차이점과 지각이 일어나는 순서에 집중하여 읽어야 합니다.
# (가) 문단1 : 동일론과 기능주의의 대립
“심리 철학에서 동일론은 의식이 뇌의 물질적 상태와 동일하다고 본다.”
첫 문장은 동일론이라는 입장의 정의를 제시합니다. 동일론은 사람의 의식을 철저하게 뇌라는 물질 그 자체로 취급합니다. 이는 이어지는 기능주의와 대비되는 기준점이 됩니다.
“이와 달리 기능주의는 의식은 기능이며, 서로 다른 물질에서 같은 기능이 구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문장은 동일론과 반대되는 기능주의의 주장을 소개합니다. 기능주의는 의식이 물질이 아니라 기능 그 자체라고 봅니다. 따라서 뇌가 아닌 전혀 다른 물질로 만들어진 존재도 같은 기능을 한다면 의식이 있다고 인정하게 됩니다.
“이때 기능이란 어떤 입력이 주어졌을 때 특정한 출력을 내놓는 함수적 역할로 정의되며, 함수적 역할의 일치는 입력과 출력의 쌍이 일치함을 의미한다.”
방금 인용한 내용은 기능주의에서 말하는 기능의 뜻을 구체적인 조건으로 풀어 설명합니다. 특정한 입력이 들어올 때 정해진 출력이 나오는 작용이 똑같다면 기능이 일치한다고 봅니다. 이는 다음 문장에 등장할 로봇의 예시를 이해하는 핵심 기준이 됩니다.
“실리콘 칩으로 구성된 로봇이 찔림이라는 입력에 대해 고통을 출력으로 내놓는 기능을 가진다면, 로봇과 우리는 같은 의식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 문장은 앞서 설명한 기능의 일치를 구체적인 상황에 적용한 예시입니다. 인간의 뇌가 아닌 금속 칩으로 만들어진 로봇이라도 찔림이라는 원인에 대해 고통이라는 결과를 낸다면 인간과 같은 의식을 가진다고 가정합니다. 이를 통해 의식의 존재를 판별하는 기능주의의 기준을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기능주의는 의식을 구현하는 물질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일문단의 마지막 문장은 기능주의의 핵심적인 결론을 요약합니다. 의식을 만들어내는 바탕이 인간의 고기 뇌이든 로봇의 금속 칩이든 상관없다는 뜻입니다. 이 결론은 바로 다음 문단에서 강력한 비판의 대상이 될 준비를 마칩니다.
# (가) 문단2 : 설의 기능주의 비판
“설은 기능주의를 반박하는 사고 실험을 제시한다.”
이 문장은 글의 흐름을 기능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전환합니다. 설이라는 인물이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실험을 통해 기능주의의 허점을 찌르려 합니다. 이 실험의 내용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주목해야 합니다.
“‘중국어 방’ 안에 중국어를 모르는 한 사람만 있다고 하자.”
설이 제안한 실험의 구체적인 상황 설정입니다. 중국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실험의 주인공으로 내세웁니다. 이 조건은 나중에 기능주의의 논리를 무너뜨리는 결정적인 무기가 됩니다.
“그는 중국어로 된 입력이 들어오면 정해진 규칙에 따라 중국어로 된 출력을 내놓는다.”
방 안의 사람은 뜻을 모르더라도 규칙에 따라 모양만 보고 답을 찾아 밖으로 내보냅니다. 이는 앞 문단에서 살펴본 기능주의의 조건, 즉 입력과 출력의 쌍이 일치하는 상황을 그대로 재현한 것입니다.
“설에 의하면 방 안의 사람은 중국어 사용자와 함수적 역할이 같지만 중국어를 아는 것은 아니다.”
실험의 결과이자 설의 핵심 주장입니다. 방 안의 사람은 겉보기에 완벽한 출력을 내놓으므로 중국어 사용자와 기능이 같습니다. 하지만 속으로는 중국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진짜 의식은 없다는 뜻입니다.
“기능이 같으면서 의식은 다른 사례가 있다는 것이다.”
이 문장은 설의 사고 실험이 도출한 최종 결론입니다. 기능이 일치하면 무조건 의식도 같아야 한다는 기능주의의 주장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증거를 찾아낸 것입니다. 이로써 기능주의의 논리는 큰 타격을 입게 됩니다.
기능주의의 완벽해 보이는 논리가 여기서 무너집니다. 입력과 출력이 같으면 의식이 같다는 기능주의의 핵심 조건을 그대로 충족했는데도, 실제로는 뜻을 전혀 모르는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논리적 빈틈을 파고드는 반박의 과정을 잘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 개념·관점이 열거되면 이들 간의 차이점에 중점을 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표의 형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가) 문단3 : 의식 논의의 확장과 로랜즈 이론 도입
“동일론, 기능주의, 설은 모두 의식에 대한 논의를 의식을 구현하는 몸의 내부로만 한정하고 있다.”
이 문장은 앞서 다룬 세 가지 철학적 입장이 가진 공통된 한계를 지적합니다. 세 입장은 서로 치열하게 다투었지만, 결국 의식이라는 현상이 몸 안에서만 일어난다고 믿었다는 점에서는 똑같습니다. 이는 새로운 이론이 등장할 발판이 됩니다.
“하지만 의식의 하나인 ‘인지’ 즉 ‘무언가를 알게 됨’은 몸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과 맞물려 벌어진다.”
여기서 글의 방향이 크게 바뀝니다. 무언가를 아는 행위는 몸 안에서 혼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몸 바깥의 세상과 함께 일어난다고 주장합니다. 기존의 상식을 깨고 의식의 범위를 몸 밖으로 넓히는 선언입니다.
여기서 글의 초점이 완전히 바뀝니다. 이전까지는 의식이 무엇인지에 대해 싸웠다면, 이제는 무언가를 아는 행위가 일어나는 무대가 몸 안인지 밖인지로 논의가 확장되었습니다. 새로운 기준이 세워진 것입니다.
“기억나지 않는 정보를 노트북에 저장된 파일을 열람하여 확인하는 것이 한 예이다.”
몸 바깥과 맞물려 인지가 일어나는 현상을 쉽게 보여주는 예시입니다. 내 머릿속에 없는 정보를 외부의 물건인 노트북에서 찾아보는 행동이 바로 인지 과정의 일부라는 뜻입니다. 일상적인 행동이 철학적 논의로 연결됩니다.
“로랜즈의 확장 인지 이론은 이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이 문단에서 제기된 새로운 관점을 체계적으로 설명할 주인을 소개합니다. 로랜즈라는 학자의 이론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며, 앞으로 이 이론이 어떻게 외부와 몸 안을 연결하는지 자세히 다루어질 것입니다.
# (가) 문단4 : 로랜즈의 확장 인지 메커니즘
“그에 따르면 인지 과정은 주체에게 ‘심적 상태’가 생겨나게 하는 과정이다.”
로랜즈가 정의하는 인지 과정의 목적을 보여줍니다. 외부와 연결되든 어떻든 간에, 결국 인지 과정의 최종 결과물은 사람에게 심적 상태라는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 심적 상태의 뜻이 이어질 것입니다.
“기억이나 믿음이 심적 상태의 예이다.”
심적 상태라는 낯선 용어를 친숙한 단어로 연결해 줍니다. 우리가 머릿속에 무언가를 담아두거나 옳다고 생각하는 상태가 모두 심적 상태에 해당합니다. 이는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심적 상태는 어떤 것에도 의존함이 없이 주체에게 의미를 나타낸다.”
심적 상태의 가장 중요한 성질을 규정합니다. 내 머릿속에 있는 기억은 다른 무언가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나 스스로 바로 뜻을 이해할 수 있다는 독립성을 가집니다. 이는 곧 등장할 파생적 상태와 완벽하게 대비되는 특징입니다.
“예를 들어, 무언가를 기억하는 사람은 자기의 기억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아무것에도 의존할 필요가 없다.”
앞 문장의 독립성을 다시 한번 일상적인 상황으로 풀어냅니다. 내가 어제 먹은 점심을 떠올릴 때 남에게 묻거나 사전을 찾아볼 필요가 없는 것처럼, 심적 상태는 그 자체로 온전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와 달리 ‘파생적 상태’는 주체의 해석에 의존해서만 또는 사회적 합의에 의존해서만 의미를 나타내는 상태로 정의된다.”
심적 상태와 반대되는 파생적 상태의 뜻을 정의합니다. 파생적 상태는 스스로 뜻을 전달하지 못하고 누군가 읽고 해석해주거나 사회적인 약속이 있어야만 비로소 의미가 생기는 불완전한 상태입니다. 조건이 붙어야만 성립한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앞의 예에서 노트북에 저장된 정보는 전자적 신호가 나열된 상태로서 파생적 상태이다.”
노트북 예시를 파생적 상태라는 개념에 정확히 대입합니다. 노트북 안의 파일은 그저 기계적인 신호일 뿐이어서 누군가 읽어주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으므로 파생적 상태에 해당합니다. 이론과 실제 사례가 연결되는 부분입니다.
“주체에 의해 열람된 후에도 노트북의 정보는 여전히 파생적 상태이다.”
이 문장은 학생들이 흔히 저지르는 오해를 차단합니다. 사람이 노트북 화면을 보았다고 해서 노트북 안의 신호가 갑자기 스스로 의미를 가지는 존재로 변신하지는 않습니다. 외부의 정보는 끝까지 외부의 정보로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열람 후 주체에게는 기억이 생겨난다.”
노트북의 정보는 그대로지만, 그것을 바라본 사람의 머릿속에는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음을 밝힙니다. 비어있던 머릿속에 없던 기억이 새롭게 태어난 것입니다. 이로써 외부와 내부의 역할이 명확히 구분됩니다.
“로랜즈에게 인지 과정은 파생적 상태가 심적 상태로 변환되는 과정이 아니라, 파생적 상태를 조작함으로써 심적 상태를 생겨나게 하는 과정이다.”
로랜즈 이론의 가장 핵심적인 원리가 등장합니다. 외부 정보가 내 머릿속으로 이동하여 기억으로 형태를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외부 정보를 도구처럼 다루고 조작하는 행동을 통해 내 머릿속에 새로운 기억을 창조해내는 과정입니다.
이 부분에서 학생들이 큰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노트북의 정보가 머릿속으로 들어와 기억으로 성질을 바꾸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지문은 명시적으로 변환되는 것이 아니라고 부정합니다. 정보는 원래 상태 그대로 남아있고, 그것을 보고 내 머릿속에 새로운 기억이 창조되는 것입니다.
“심적 상태가 주체의 몸 외부로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 심적 상태를 생겨나게 하는 인지 과정이 확장되는 것이다.”
무엇이 몸 밖으로 나아가는 것인지 그 대상을 정확히 짚어줍니다. 기억 그 자체가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트북을 보고 조작하는 일련의 행동과 흐름이 몸 밖으로 뻗어나간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확장된 인지 과정은 인지 주체의 것일 때에만, 다시 말해 환경의 변화를 탐지하고 그에 맞춰 행위를 조절하는 주체와 통합되어 있을 때에만 성립할 수 있다.”
인지 과정이 밖으로 뻗어나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필수 조건을 제시합니다. 외부 환경을 살피고 자신의 행동을 조절할 수 있는 살아있는 중심 존재와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야만 이 모든 과정이 가능합니다. 확장을 위해 중심이 튼튼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즉 로랜즈에게 주체 없는 인지란 있을 수 없다.”
앞선 필수 조건을 단호한 문장으로 못 박습니다. 인지가 아무리 밖으로 확장되더라도 그 모든 것을 이끄는 사람, 즉 주체가 없다면 인지는 아예 일어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입니다. 주체의 절대적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확장 인지 이론은 의식의 문제를 몸 안으로 한정하지 않고 바깥으로까지 넓혀 설명한다는 의의를 지닌다.”
글의 전반부인 가 지문을 마무리하며 로랜즈 이론의 가치를 평가합니다. 수많은 철학자들이 몸 안쪽만 바라보고 있을 때, 과감하게 몸 바깥의 세상까지 논의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큰 성과가 있습니다.
어떤 과정이 주어지면, 이를 여러 단계로 쪼개어 순차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과 같이 화살표로 이어지는 여러 단계들을 떠올리면서 읽도록 합시다.

# (나) 문단1 : 지각의 정의와 딜레마
“일반적으로 ‘지각’이란 몸의 감각 기관을 통해 사물에 대해 아는 것을 의미한다.”
나 지문을 시작하며 지각이라는 단어의 일반적인 뜻을 먼저 밝힙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져서 바깥의 물건을 인식하는 흔한 상황을 지각이라고 부릅니다. 이 평범한 정의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됩니다.
“이러한 지각을 분석할 때 두 가지 사실에 직면한다.”
지각이라는 현상을 깊이 따져보면 두 가지 모순된 상황을 만나게 됨을 안내합니다. 평범해 보이는 행동 속에 철학적으로 복잡한 문제가 숨어 있다는 뜻입니다.
“첫째, 그 사물과 내 몸은 물질세계에 있다.”
우리가 마주하는 첫 번째 사실은 눈에 보이는 껍데기에 대한 것입니다. 내가 바라보는 물건이나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육체는 모두 눈으로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똑같은 현실의 물질이라는 점입니다.
“둘째, 그 사물에 대한 나의 의식은 물질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 있다.”
두 번째 사실은 보이지 않는 정신에 대한 것입니다. 내 몸은 물질이지만, 그 사물을 알아채고 생각하는 내 머릿속의 마음은 만질 수 없는 전혀 다른 차원의 세상에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즉 몸으로서의 나는 사물과 같은 세계에 속하는 동시에 의식으로서의 나는 사물과 다른 세계에 속한다.”
앞선 두 가지 사실이 합쳐지면서 발생하는 난감한 상황을 정리합니다. 나라는 하나의 존재가, 육체로는 사물과 같은 세상에 살면서 정신으로는 사물과 단절된 다른 세상에 사는 반쪽짜리 분열을 겪게 됩니다.
# (나) 문단2 : 객관주의 철학의 두 입장과 공통된 한계
“이에 대한 객관주의 철학의 입장은 두 가지로 나뉜다.”
앞 문단에서 발생한 육체와 정신의 분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객관주의 철학을 소개합니다. 이 철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두 가지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합니다. 각각의 길이 무엇인지 살펴봐야 합니다.
“의식을 포함한 모든 것을 물질로 환원하여 의식은 물질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거나, 의식을 물질과 구분되는 독자적 실체로 규정함으로써 의식과 물질의 본질적 차이를 주장한다.”
객관주의의 두 가지 해결책을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첫 번째 길은 정신도 결국 물질의 일종일 뿐이라며 모든 것을 하나로 통일하는 길입니다. 두 번째 길은 정신과 물질은 아예 뿌리부터 다른 별개의 것이라며 철저히 나누는 길입니다.
“전자에 의하면 지각은 사물로부터의 감각 자극에 따른 주체의 물질적 반응으로 이해되며, 후자에 의하면 지각은 감각된 사물에 대한 주체 즉 의식의 판단으로 이해된다.”
두 가지 길에 따라 지각을 해석하는 방식도 달라짐을 설명합니다. 모든 것을 물질로 보는 쪽은 지각을 그저 기계적인 육체의 반응으로 봅니다. 반면 둘을 분리하는 쪽은 지각을 고차원적인 정신의 판단으로 높여서 봅니다.
“이처럼 양자 모두 주체와 대상의 분리를 전제하고 지각을 이해한다.”
여기서 객관주의 철학의 치명적인 문제점이 드러납니다. 두 입장이 서로 치열하게 싸우는 것 같지만, 사실 나라는 존재와 바깥의 사물이 이미 남남으로 갈라져 있다는 똑같은 밑바탕을 깔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은 지각 이전에 이미 확정되어 각각 존재한다는 것이다.”
객관주의가 공유하는 공통된 밑바탕을 구체적인 시간 순서로 꼬집습니다. 내가 무언가를 지각하기 한참 전부터 나와 사물은 이미 각자의 자리에 완성된 채로 따로 존재한다고 믿는 오류입니다. 이 순서는 다음 문단에서 완전히 뒤집힙니다.
# (나) 문단3 : 얽힘의 체험으로서의 지각
“하지만 지각은 주체와 대상이 각자로서 존재하기 이전에 나타나는 얽힘의 체험이다.”
이 글을 쓴 필자의 진짜 주장이 등장합니다. 필자는 객관주의의 시간 순서를 정면으로 거부합니다. 지각은 나와 사물이 따로 떨어져 완성되기도 전에 서로 복잡하게 뒤엉켜 하나가 되는 경험이라고 새롭게 정의합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과 손이 맞닿을 때 내가 누군가의 손을 만지는 동시에 나의 손 역시 누군가에 의해 만져진다.”
앞선 얽힘의 의미를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손잡기 예시입니다. 두 사람의 손이 닿는 순간, 내가 상대를 일방적으로 만지는 것이 아니라 나 역시 동시에 상대방에게 만져지는 쌍방향의 교류가 발생함을 설명합니다.
“감각하는 것이 동시에 감각되는 것이 되는 얽힘의 순간에, 나는 나와 대상을 확연히 구분한다.”
손을 잡는 것처럼 서로 뒤엉키는 그 찰나의 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변화가 생깁니다. 그제야 비로소 나는 어디까지가 내 손이고 어디부터가 상대의 손인지 경계선을 긋고 나눌 수 있게 됩니다.
“지각이라는 얽힘의 작용이 있어야 주체와 대상이 분리될 수 있다.”
필자의 주장을 인과 관계로 명확히 정리합니다. 지각이라는 서로 부딪치고 얽히는 사건이 원인으로 작용해야만, 그 결과로 나와 대상이 나누어지고 분리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지각이 먼저라는 점이 핵심입니다.
“다시 말해 주체와 대상은 지각이 일어난 이후 비로소 확정된다.”
방금 전 문장을 시간의 순서로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지각이라는 사건이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나와 대상의 모습이 완성되고 결정됩니다. 객관주의 철학의 순서를 완벽하게 뒤집어버린 결론입니다.
시간적 순서가 완전히 뒤집히는 결정적인 순간입니다. 나와 대상이 먼저 있고 지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얽히는 지각 작용이 먼저 일어난 이후에야 그 결과로 나와 대상이 확정되는 것입니다. 상식적인 시간 감각을 버리고 지문의 논리를 따라야 합니다.
“따라서 지각과 감각은 서로 구분되지 않는다.”
이 문단 논리의 최종 종착지입니다. 지각이 고차원적인 정신의 작용이 아니라 몸이 부딪치며 얽히는 체험이라면, 결국 지각은 피부로 느끼는 감각과 똑같은 층위의 사건이 됩니다. 두 개념을 똑같은 것으로 취급하라는 선언입니다.
어떤 과정이 주어지면, 이를 여러 단계로 쪼개어 순차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과 같이 화살표로 이어지는 여러 단계들을 떠올리면서 읽도록 합시다.

# (나) 문단4 : 내 몸의 체험으로서의 지각
“지각은 물질적 반응이나 의식의 판단이 아니라, 내 몸의 체험이다.”
글 전체를 마무리하며 객관주의의 두 가지 입장을 모두 거부합니다. 지각은 단순한 기계적 반응도 아니고 머릿속의 고상한 생각도 아니며, 오직 나의 몸 전체가 겪어내는 생생한 경험 그 자체라고 확정 짓습니다.
“지각은 나의 몸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고, 지각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은 모두 나의 몸이다.”
마지막 문장은 지각을 일으키고 주도하는 유일한 주인공이 바로 육체를 가진 몸임을 선언합니다. 머릿속의 정신이나 분리된 사물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몸이 세계를 인식하는 중심축이라는 점을 묵직하게 전달하며 글이 끝납니다.
본 자료의 무단 복제·배포·전송을 금지하며, 위반 시 민·형사상 책임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가)의 1문단에 따르면 "심리 철학에서 동일론은 의식이 뇌의 물질적 상태와 동일하다고 본다"고 되어있으므로 참이다.
(가)의 1문단에 따르면 의식을 구현하는 물질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보는 입장은 동일론이 아니라 기능주의이므로 거짓이다.
(가)의 1문단에 따르면 기능주의는 "서로 다른 물질에서 같은 기능이 구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고 되어있으므로 참이다.
(가)의 1문단에 따르면 "함수적 역할의 일치는 입력과 출력의 쌍이 일치함을 의미한다"고 되어있으므로 참이다.
(가)의 2문단에 따르면 "설(Searle)은 기능주의를 반박하는 사고 실험을 제시한다. ‘중국어 방’ 안에..."고 되어있으므로 참이다.
(가)의 2문단에 따르면 "방 안의 사람은 중국어 사용자와 함수적 역할이 같지만"이라고 되어있으므로 거짓이다.
(가)의 2문단에 따르면 설은 기능주의를 반박하며 "기능이 같으면서 의식은 다른 사례가 있다"고 주장하므로 거짓이다.
(가)의 3문단에 따르면 "동일론, 기능주의, 설은 모두 의식에 대한 논의를 의식을 구현하는 몸의 내부로만 한정하고 있다"고 되어있으므로 참이다.
(가)의 3문단에 따르면 "의식의 하나인 ‘인지’ 즉 ‘무언가를 알게 됨’은 몸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과 맞물려 벌어진다"고 되어있으므로 거짓이다.
(가)의 4문단에 따르면 "인지 과정은 주체에게 ‘심적 상태’가 생겨나게 하는 과정이다"라고 되어있으므로 참이다.
(가)의 4문단에 따르면 "기억이나 믿음이 심적 상태의 예이다"라고 되어있으므로 참이다.
(가)의 4문단에 따르면 "심적 상태는 어떤 것에도 의존함이 없이 주체에게 의미를 나타낸다"고 되어있으므로 거짓이다.
(가)의 4문단에 따르면 "‘파생적 상태’는 주체의 해석에 의존해서만 또는 사회적 합의에 의존해서만 의미를 나타내는 상태"라고 되어있으므로 참이다.
(가)의 4문단에 따르면 "노트북에 저장된 정보는 전자적 신호가 나열된 상태로서 파생적 상태이다"라고 되어있으므로 참이다.
(가)의 4문단에 따르면 "주체에 의해 열람된 후에도 노트북의 정보는 여전히 파생적 상태이다"라고 되어있으므로 거짓이다.
(가)의 4문단에 따르면 "인지 과정은 파생적 상태가 심적 상태로 변환되는 과정이 아니라, 파생적 상태를 조작함으로써 심적 상태를 생겨나게 하는 과정이다"라고 되어있으므로 참이다.
(가)의 4문단에 따르면 "심적 상태가 주체의 몸 외부로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 심적 상태를 생겨나게 하는 인지 과정이 확장되는 것이다"라고 되어있으므로 거짓이다.
(가)의 4문단에 따르면 "로랜즈에게 주체 없는 인지란 있을 수 없다"고 되어있으므로 거짓이다.
(가)의 4문단에 따르면 "확장 인지 이론은 의식의 문제를 몸 안으로 한정하지 않고 바깥으로까지 넓혀 설명한다는 의의를 지닌다"고 되어있으므로 참이다.
(나)의 1문단에 따르면 지각을 분석할 때 마주하는 첫째 사실로 "그 사물과 내 몸은 물질세계에 있다"고 되어있으므로 참이다.
(나)의 1문단에 따르면 "사물에 대한 나의 의식은 물질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 있다"며 사물과 다른 세계에 속한다고 하였으므로 거짓이다.
(나)의 2문단에 따르면 객관주의 철학의 입장 중 하나로 "의식을 포함한 모든 것을 물질로 환원하여 의식은 물질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고 되어있으므로 참이다.
(나)의 2문단에 따르면 의식을 물질로 환원하는 전자의 입장은 지각을 "사물로부터의 감각 자극에 따른 주체의 물질적 반응"으로 이해하므로 거짓이다.
(나)의 2문단에 따르면 의식을 독자적 실체로 규정하는 후자의 입장은 지각을 "감각된 사물에 대한 주체 즉 의식의 판단으로 이해된다"고 되어있으므로 참이다.
(나)의 2문단에 따르면 객관주의의 두 입장 모두 "주체와 대상의 분리를 전제하고 지각을 이해한다"고 되어있으므로 참이다.
(나)의 2문단에 따르면 객관주의 철학은 "주체와 대상은 지각 이전에 이미 확정되어 각각 존재한다"고 주장하므로 거짓이다.
(나)의 3문단에 따르면 "지각은 주체와 대상이 각자로서 존재하기 이전에 나타나는 얽힘의 체험이다"라고 되어있으므로 참이다.
(나)의 3문단에 따르면 "지각이라는 얽힘의 작용이 있어야 주체와 대상이 분리될 수 있다"고 되어있으므로 참이다.
(나)의 3문단에 따르면 "따라서 지각과 감각은 서로 구분되지 않는다"고 되어있으므로 거짓이다.
(나)의 4문단에 따르면 "지각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은 모두 나의 몸이다"라고 되어있으므로 참이다.
본 자료의 무단 복제·배포·전송을 금지하며, 위반 시 민·형사상 책임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가)의 1문단에 따르면 "심리 철학에서 동일론은 의식이 뇌의 물질적 상태와 동일하다고 본다"고 되어있으므로 정답은 동일론이다.
(가)의 1문단에 따르면 "기능이란 어떤 입력이 주어졌을 때 특정한 출력을 내놓는 함수적 역할로 정의"된다고 되어있으므로 정답은 기능이다.
(가)의 2문단에 따르면 "설(Searle)은 기능주의를 반박하는 사고 실험을 제시한다. ‘중국어 방’ 안에..."고 되어있으므로 정답은 중국어 방이다.
(가)의 4문단에 따르면 "심적 상태는 어떤 것에도 의존함이 없이 주체에게 의미를 나타낸다"고 되어있으므로 정답은 심적 상태이다.
(가)의 4문단에 따르면 "‘파생적 상태’는 주체의 해석에 의존해서만 또는 사회적 합의에 의존해서만 의미를 나타내는 상태로 정의된다"고 되어있으므로 정답은 파생적 상태이다.
(가)의 4문단에 따르면 의식의 문제를 몸 바깥으로 넓혀 설명하는 로랜즈의 이론을 "확장 인지 이론"이라고 부르므로 정답은 확장 인지 이론이다.
(나)의 1문단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지각’이란 몸의 감각 기관을 통해 사물에 대해 아는 것을 의미한다"고 되어있으므로 정답은 지각이다.
(나)의 2문단에 따르면 이러한 입장을 "객관주의 철학의 입장"으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정답은 객관주의 철학이다.
(나)의 3문단에 따르면 "지각은 주체와 대상이 각자로서 존재하기 이전에 나타나는 얽힘의 체험이다"라고 되어있으므로 정답은 얽힘의 체험이다.
(나)의 4문단에 따르면 "지각은 물질적 반응이나 의식의 판단이 아니라, 내 몸의 체험이다. 지각은 나의 몸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고"라고 되어있으므로 정답은 지각이다.
본 자료의 무단 복제·배포·전송을 금지하며, 위반 시 민·형사상 책임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가 지문은 의식의 범주를 분류하여 구체적 사례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이론적 한계를 보완하는 새 이론을 설명하고 있으며, 나 지문은 지각의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단계별로 분석하고 있지 않다.
가 지문은 역사적 발생 순서에 따른 통시적 나열이 아니라 병렬적 관점 비교를 수행하고 있으며, 나 지문 역시 특정 철학자의 생애를 중심으로 학문의 발전 과정을 서술하고 있지 않다.
가 지문은 대립하는 두 주장을 절충한 것이 아니라 기존 한계를 극복하는 확장 인지 이론을 소개하며, 나 지문은 객관주의 철학 내부의 모순을 지적하여 두 입장이 동일함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양자 모두를 비판하고 있다.
가 지문은 의식을 몸 내부로 한정한 기존 이론들의 한계를 지적하며 확장 인지 이론을 소개하고, 나 지문은 주체와 대상의 분리를 전제한 객관주의 철학을 비판하며 내 몸의 체험으로서의 지각이라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가 지문은 실험적 방법론의 타당성을 데이터로 검증하는 것이 아니며, 나 지문은 상반된 철학적 입장을 비교하여 각각의 한계를 보완할 해결책을 제안하는 것이 아니라 필자만의 독자적인 지각관을 주장하고 있다.
심적 상태 자체가 주체의 몸 바깥으로 스스로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 심적 상태를 생겨나게 하는 인지 과정이 외부 환경으로 확장되는 것입니다.
파생적 상태는 인지 과정에서 조작의 대상이 되더라도 여전히 주체의 해석 등에 의존하여 의미를 나타내는 파생적 상태를 온전히 유지합니다.
지문에 따르면 심적 상태는 어떤 것에도 의존함이 없이 독자적으로 주체에게 의미를 나타냅니다. 반면 파생적 상태는 주체의 해석이나 사회적 합의에 의존해서만 의미를 나타내는 속성을 지니므로 가장 적절한 진술입니다.
환경의 변화를 탐지하고 행위를 조절하는 것은 인지 주체의 역할이며, 확장된 인지 과정은 이러한 주체와의 통합이 필수적으로 요구됩니다.
파생적 상태인 정보는 주체에 의해 열람된 이후에도 본래의 성질을 상실하거나 탈바꿈하지 않고 여전히 파생적 상태로 남습니다.
기능주의는 동일한 함수적 역할이 동일한 의식을 필연적으로 동반한다고 주장하므로, 역할이 같아도 의식이 존재하지 않는 사례가 있다는 s3에는 결코 긍정하지 않습니다.
기능주의는 입력과 출력의 역할이 동일하다면 로봇과 인간이 완전히 같은 의식을 지닌다는 s1의 명제에 적극적으로 동의합니다.
설은 함수적 역할의 일치가 의식의 존재를 증명하지 못한다고 비판했으므로, 로봇이 같은 의식을 가진다는 s1의 명제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설은 사고 실험의 전제로서 방 안의 사람이 중국어 사용자와 동일한 함수적 역할을 수행한다는 사실 자체(s2)는 인정하고 실험을 전개했으므로 이에 동의합니다.
설은 사고 실험을 통해 함수적 역할이 완전히 동일하더라도 실제 의식이 존재하지 않을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따라서 기능적 일치가 동일한 의식을 보장한다는 s1에 반대하고, 기능이 같아도 의식이 다를 수 있다는 s3에 찬성하는 것이 가장 적절합니다.
객관주의 중 후자는 의식을 물질과 구분되는 독자적 실체로 규정하며 지각을 의식의 판단으로 이해하므로, 이는 의식이 다른 세계에 속한다는 이원론적 인식을 내포한다.
필자는 감각하는 것과 감각되는 것이 동시에 일어나는 얽힘의 작용이 있어야 주체와 대상이 확정되고 분리될 수 있다고 보았으므로, 얽힘이 없다면 확정도 일어나지 않는다.
필자는 지각이 물질적 반응이나 의식의 판단이 아니라고 부정하며, 지각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은 모두 나의 몸이라고 명시하여 몸의 주도권을 강조하고 있다.
객관주의 중 전자는 지각을 감각 자극에 따른 주체의 물질적 반응으로 이해하므로, 사물로부터 감각 자극이 먼저 발생하고 그에 따른 물질적 반응이 후행한다는 선후 관계를 전제한다.
필자는 지각이 일어난 이후 비로소 주체와 대상이 확정된다고 보았으므로, 손을 만지는 체험 이전에 주체와 대상이 이미 확정되어 각각 존재한다는 시각은 객관주의의 오류로 간주한다.
객관주의 중 전자의 입장은 지각을 사물로부터의 감각 자극에 따른 주체의 물질적 반응으로 파악하므로, 운전대와의 물리적 상호작용 역시 물질적 반응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객관주의 중 후자의 입장은 지각을 감각된 사물에 대한 의식의 독자적 판단으로 규정하므로, 화면을 보고 길을 파악하는 행위를 의식의 판단 과정으로 파악하는 것은 타당하다.
필자는 감각하는 것과 감각되는 것이 동시에 일어나는 얽힘의 작용이 일어난 이후에 비로소 주체와 대상이 확정되고 분리된다고 명시하였으므로 적절한 진술이다.
로랜즈는 인지 과정이 파생적 상태가 심적 상태로 변환되는 것이 아니라 파생적 상태를 조작하여 심적 상태를 생겨나게 하는 과정이라고 명시하였다. 따라서 A가 화면의 전자 지도를 확인하는 것은 파생적 상태가 심적 상태로 변환되는 과정이 아니다.
파생적 상태는 주체에 의해 열람된 후에도 여전히 주체의 해석에 의존해서만 의미를 나타내는 파생적 상태로 남는다. 따라서 화면의 경로 정보는 A에 의해 확인된 후에도 해석에 의존해야 의미를 나타내는 상태를 유지한다.
본 자료의 무단 복제·배포·전송을 금지하며, 위반 시 민·형사상 책임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기능주의는 서로 다른 물질이라도 같은 함수적 역할이 구현되면 동일한 의식을 가진다고 주장하므로, 서로 다른 의식을 지니게 된다는 설명은 적절하지 않다.
설의 사고 실험은 중국어 방 안의 사람이 중국어 사용자와 동일한 함수적 역할을 수행함에도 불구하고 중국어를 아는 의식이 없다는 점을 전제하므로 오답이다.
필자는 주체와 대상의 분리를 전제하는 객관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하며, 얽힘이 발생한 이후에야 주체와 대상이 분리된다고 주장하므로 객관주의의 전제를 옹호한다는 것은 오답이다.
로랜즈는 파생적 상태를 조작함으로써 심적 상태를 생겨나게 하는 인지 과정 자체가 확장된다고 주장하며, 이 확장은 환경의 변화를 탐지하는 주체와 통합되어 있을 때에만 성립한다고 명확히 규정하였다.
지문은 동일론과 기능주의가 모두 의식에 대한 논의를 의식을 구현하는 몸의 내부로만 한정하고 있다는 한계를 지닌다고 명시하였으므로 사실과 다르다.
로랜즈의 이론은 인지 과정이 파생적 상태가 심적 상태로 변환되는 과정이 결코 아님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 자체로 주체에게 독립적인 의미를 나타내는 것은 심적 상태의 본질이며, 노트북의 정보는 해석에 의존하는 파생적 상태입니다.
이론에서 외부로 확장되는 것은 심적 상태가 아니라 이를 생겨나게 하는 인지 과정 자체이며, 파생적 상태가 독립적으로 심적 상태를 이식하는 것은 아닙니다.
파생적 상태는 주체의 해석에 의존해야만 의미를 나타냅니다. 본문은 인지 과정이 이 파생적 상태를 심적 상태로 변환시키는 것이 아니라 조작할 뿐이라고 밝혔으므로, 노트북의 정보는 열람 이후에도 여전히 주체의 해석에 의존해야 하는 본질을 유지합니다.
확장된 인지 과정은 환경의 변화를 탐지하는 주체와 반드시 통합되어야만 성립하므로, 정보 스스로 조작 기능을 갖는다는 진술은 오답입니다.
의식을 물질로 환원하는 전자의 입장은 지각을 사물의 감각 자극에 따른 반응으로 규정하므로, 외부 자극이 물리적 반응보다 선행한다고 전제합니다.
의식을 독자적 실체로 보는 입장은 물질과 의식의 본질적 차이를 주장하며, 의식이 몸이 위치한 물질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 존재함을 전제로 합니다.
객관주의 철학은 양 입장 모두 지각 이전에 주체와 대상이 이미 확정되어 각각 존재한다고 전제합니다. 지각 작용(얽힘)을 거친 이후에 분리된다고 보는 것은 필자의 관점이므로 객관주의의 시각으로는 완전히 틀린 진술입니다.
두 입장은 의식을 물질로 보느냐 아니냐에서 대립하지만, 지각이 발생하기 이전에 이미 주체와 대상이 분리되어 확정되어 있다는 전제를 동일하게 공유합니다.
객관주의 철학은 물질세계의 몸과 다른 세계의 의식이라는 이원론적 사실이 충돌하는 분열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두 가지 대안적 접근법을 보여줍니다.
기능주의는 함수적 역할이 일치하면 물질에 관계없이 동일한 의식을 가진다고 규정하므로 타당한 추론이다.
의식을 물질로 환원하는 객관주의 입장은 지각을 사물로부터의 자극에 대한 물질적 반응으로 이해하므로 난로에 대한 반사 작용을 물질적 반응으로 보는 것은 일치한다.
필자는 감각하는 것과 감각되는 것이 동시에 일어나는 얽힘의 순간 이후에 주체와 대상이 분리되고 확정된다고 보았으므로 악수의 사례에 이를 적용한 것은 적절하다.
필자는 지각이 의식의 판단이 아니라 오직 내 몸의 체험이라고 명확히 규정하였다. 지각 이전에 의식의 판단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진술은 필자의 핵심 주장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오답이다.
로랜즈는 인지 과정을 파생적 상태가 심적 상태로 변환되는 것이 아니라 파생적 상태를 조작함으로써 심적 상태를 생겨나게 하는 과정으로 정의하였으므로 적절한 반응이다.
필자는 주체와 대상이 지각이 일어난 이후 확정된다고 보았고, C 역시 진정한 주체는 마찰음이라는 얽힘 속에서 비로소 탄생한다고 주장하므로 두 관점 모두 얽힘 이전의 주체와 대상 확정을 부정한다.
주체가 감각된 사물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것은 객관주의 철학 중 후자의 입장에 해당한다. C와 필자는 모두 얽힘의 작용이 우선되어야만 주체와 대상이 확정된다고 보므로, 판단 과정을 거친 이후 얽힘이 나타난다는 진술은 인과 관계를 완전히 뒤바꾼 오답이다.
로랜즈는 인지 과정이 성립하기 위해 환경의 변화를 탐지하는 주체와의 통합이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C는 이처럼 환경과 상호작용하기 이전에 주체의 존재를 전제하는 것을 결정적 오류라고 비판하므로 적절한 진술이다.
로랜즈가 주체 없는 인지란 있을 수 없다고 본 것은 주체가 환경(대상)과 얽히기 이전에 확정되어 존재함을 의미한다. C는 이를 사전에 주체와 대상이 분리되어 존재한다는 객관주의적 전제와 같다고 지적할 것이므로 적절하다.
로랜즈의 주체는 환경의 변화를 탐지하기 이전에 이미 존재하는 주체이다. C는 이를 두고 세계와 몸이 맞닿는 최초의 마찰음에서 주체가 탄생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주체를 미리 확정한 오류라고 평가할 것이므로 적절하다.
본 자료의 무단 복제·배포·전송을 금지하며, 위반 시 민·형사상 책임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환경의 변화를 탐지하고 그에 맞춰 자신의 행위를 조절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답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입력과 출력의 쌍이 일치하는 함수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조건으로 본문에서 답을 분명하게 찾을 수 있습니다.
의식의 독자적인 판단 작용을 내린다는 사실을 지문의 명시적 서술에서 바로 찾을 수 있습니다.
얽힘이라는 지각 작용이 먼저 일어나야만 그 이후에 대상과 분리되어 확정된다는 역전된 선후 관계로 그 이유를 충분히 찾을 수 있습니다.
동일론이 의식을 뇌의 물질적 상태로 한정한다는 사실만 있을 뿐, 뇌 이외의 다른 물질이 의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구체적 설명은 지문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필자는 주체와 대상이 물질세계에서 온전히 분리되고 확정되기 이전에 얽힘의 체험으로서 지각이 나타난다고 규정하였다.
객관주의 중 전자의 입장은 지각을 물질적 반응으로 이해하며, 감각된 사물에 대한 주체의 독자적인 의식의 판단 과정으로 정의하는 것은 후자의 입장이다.
필자는 감각하는 것과 동시에 감각되는 얽힘의 순간으로 인해 지각과 감각이 서로 구분되지 않는다고 명시하였다.
필자는 객관주의의 두 입장을 비판하며 지각이 물질적 반응이나 의식의 판단이 아니라 오직 나의 몸에 의해 이루어지는 내 몸의 체험이라고 명확히 규정하였다.
객관주의 철학의 양 입장은 주체와 대상을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양자 모두 주체와 대상의 분리를 전제하고 지각을 이해한다는 공통된 한계를 지닌다.
객관주의 철학 중 전자의 입장은 지각을 물질적 반응으로 보므로 ㄱ에 동의하지만, 지각을 감각된 사물에 대한 의식의 판단으로 보는 ㄷ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객관주의 철학 중 전자의 입장은 지각 이전에 주체와 대상이 이미 확정되어 각각 존재한다고 전제하므로 ㄴ에 동의하며, 얽힘 이후에 확정된다는 ㄹ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객관주의 철학 중 후자의 입장은 지각 이전에 주체와 대상이 확정된다는 ㄴ에 동의하지만, 지각을 물질적 반응으로 보는 ㄱ이 아니라 의식의 판단으로 이해하므로 ㄱ에 동의하지 않는다.
객관주의 철학 중 후자의 입장은 지각을 의식의 판단으로 이해하므로 ㄷ에 동의하며, 얽힘 작용 이후에 주체와 대상이 확정된다는 ㄹ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객관주의 철학 중 후자의 입장은 지각 이전에 주체와 대상의 분리를 전제하므로 ㄴ에 동의한다. 따라서 ㄴ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설명은 거짓이다.
필자는 주체와 대상이 지각이라는 얽힘의 체험 이전에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얽힘의 체험이 나타난 이후에 비로소 확정된다고 보았으므로 전제부터 거짓이다.
객관주의 철학이 주체와 대상의 분리를 사전에 전제하는 것과 로랜즈가 환경의 변화를 탐지하는 확정된 주체를 전제하는 것은 상충하는 것이 아니라 공통된 한계를 공유하는 것이다.
로랜즈는 인지 과정의 확장을 주장할 뿐 지각을 감각 자극에 따른 주체의 물질적 반응으로 이해하는 객관주의 전자의 입장과 동일한 전제를 취하는 것은 아니다.
로랜즈는 환경의 변화를 탐지하고 행위를 조절하는 인지 주체가 미리 확고히 존재하여 통합되어야 한다고 보았으며, 이는 지각 이전에 주체와 대상이 이미 확정되어 있다는 객관주의 철학의 전제와 논리적으로 일치한다.
로랜즈는 인지 과정이 파생적 상태가 심적 상태로 변환되는 과정이 아니라고 명시적으로 부정하였으므로, 로랜즈가 변환을 주장했다는 내용 자체가 거짓이다.
기능주의는 의식을 구현하는 물질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으며, 서로 다른 물질이라도 함수적 역할이 일치하면 동일한 의식을 가진다고 주장하므로 적절하다.
기능주의는 함수적 역할의 일치를 입력과 출력의 쌍이 일치하는 것으로 정의하므로, 알파가 입력을 받아 정확한 출력을 완벽하게 수행했다면 인간과 동일한 함수적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판단한다.
설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 출력을 내놓아 함수적 역할이 같더라도 실제 의식은 부재할 수 있다고 보았으므로, 알파의 연산 수행만으로는 사과를 아는 의식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설은 중국어 방 사고 실험을 통해 인간과 함수적 역할이 완전히 동일하더라도 그것이 곧 의식의 존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비판했다. 따라서 알파가 동일한 함수적 역할을 수행한다고 해서 의식을 가졌다고 평가한다는 진술은 설의 관점과 정반대이다.
동일론은 의식을 뇌의 물질적 상태와 동일한 것으로 규정하므로, 로봇 팔의 모터 등 뇌와 다른 물질적 구성을 지닌 알파가 정확한 출력을 내놓더라도 의식을 구현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본 자료의 무단 복제·배포·전송을 금지하며, 위반 시 민·형사상 책임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기능주의는 의식을 물질과 무관한 특정한 입력과 출력의 함수적 역할로 정의하며, 이 함수적 역할만 일치하면 물질에 관계없이 동일한 의식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객관주의 철학 중 의식을 물질과 구분되는 독자적 실체로 보는 입장은 지각을 감각된 사물에 대한 의식의 판단으로 규정하므로 적절한 설명이다.
필자는 타인의 손과 맞닿는 사례를 통해 감각함과 감각됨이 동시에 일어나는 얽힘의 작용 이후에야 주체와 대상이 분리되고 확정된다고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로랜즈는 인지 과정이 주체의 몸 외부로 확장된다고 주장하였으나, 심적 상태 자체가 몸 외부로 확장되는 것은 아니라고 명시적으로 부정하였으므로 해당 진술은 거짓이다.
설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 입출력을 수행해 함수적 역할이 동일하더라도, 중국어를 앎은 존재하지 않는 반례를 통해 기능주의의 허점을 정확히 비판하고 있다.
인지 과정은 파생적 상태가 변환되는 것이 아님이 지문에 명시되었으므로 인과를 잘못 연결한 거짓 진술입니다.
주체와 대상이 지각 이전에 확정된다는 것은 (나)의 객관주의 전제일 뿐 로랜즈가 주체의 필수성을 주장한 직접적 근거가 아닙니다.
확장된 인지 과정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환경의 변화를 탐지하는 주체와 굳건히 통합되어 있어야만 비로소 기능할 수 있기 때문에, 주체 없는 인지란 존재할 수 없다는 논리가 성립합니다.
파생적 상태는 반드시 주체의 해석이나 사회적 합의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의미가 성립되므로 스스로 의미를 창출한다는 것은 거짓입니다.
물리적 반응으로의 환원은 객관주의 철학 전자의 입장이며 로랜즈의 확장 인지 이론과는 무관한 개념입니다.
동일론은 의식을 반드시 인간 뇌의 물리적 상태와 동일시하므로, 물질 구성이 다르다면 출력의 결과와 무관하게 의식을 부정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설은 사고 실험을 통해 기능적 수행(출력)이 같더라도 그 안에 앎(의식)은 부재할 수 있음을 명확히 증명했습니다.
의식을 독자적 실체로 보는 입장은 의식과 물질 세계를 엄격히 분리하는 이원론적 딜레마를 바탕으로 성립된 견해입니다.
로랜즈는 외부의 파생적 상태가 주체 안으로 들어와 변환되지는 않지만, 주체가 이를 능동적으로 '조작'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반드시 내부의 심적 상태를 성공적으로 '생겨나게'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필자는 객관주의의 두 가지 입장을 모두 단호히 거부하고, 지각이 이루어지는 유일한 주도권은 나의 생생한 몸의 체험에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로랜즈는 인지 과정이 외부로 확장됨을 주장하면서도, 환경의 변화를 탐지하고 행위를 조절하는 인지 주체와의 통합을 필수적인 조건으로 전제하였으므로 올바른 추론이다.
지문에서 필자는 지각이라는 얽힘의 작용 이후에야 주체와 대상이 분리된다는 사실을 근거로 지각과 감각이 서로 구분되지 않는다고 명시적으로 도출하였으므로 적절하다.
객관주의의 두 입장은 의식을 규정하는 본질적 시각이 다르지만 양자 모두 지각 이전에 주체와 대상이 분리되어 존재한다는 전제를 공유하고 있으므로 적절한 추론이다.
설의 중국어 방 사고 실험은 중국어 사용자와 함수적 역할이 동일하더라도 실제 의식이 존재하지 않을 수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고안되었으므로 적절하다.
지문에 따르면 객관주의가 직면하는 딜레마는 주체의 몸과 감각되는 사물이 '같은 물질세계'에 속해 있다는 명백한 사실에서 출발합니다. 육체와 사물이 서로 다른 차원에 속한다는 전제는 지문의 기본 사실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오류입니다.
학자 A는 지각을 물질적 반응으로 이해하므로 객관주의 전자의 입장과 유사하나, 이 입장은 지각 이전에 주체와 대상이 확정된다고 전제하므로 얽힘 작용 이후에 분리된다고 보는 것은 거짓이다.
학자 B는 지각을 비물질적인 정신의 판단으로 보므로 객관주의 후자의 입장과 일치하며, 이들은 지각 이전에 주체와 대상이 이미 확정된다고 전제하므로 판단을 거친 이후에 확정된다고 보는 것은 거짓이다.
지각이라는 얽힘의 체험이 선행되어야 주체와 대상이 구분될 수 있다는 견해는 필자의 독자적 주장이므로 객관주의 철학을 대변하는 학자 A와 B는 이를 수용하지 않는다.
학자 A와 B는 각각 의식을 물질로 환원하는 입장과 독자적 실체로 규정하는 입장을 대변하며 대립하지만, 객관주의 철학으로서 양자 모두 지각 이전에 주체와 대상이 확정되어 있다는 전제를 공유한다.
필자는 객관주의의 두 입장을 모두 비판하며 지각이 내 몸의 체험이라고 주장하였고, 지각과 감각이 서로 구분되지 않는다고 명시하였으므로 두 입장의 결합으로 감각이 구분된다는 것은 거짓이다.
본 자료의 무단 복제·배포·전송을 금지하며, 위반 시 민·형사상 책임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